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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
    4. 20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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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폭로들이 터져나와 시끄러운 판국에 일부 외국어고등학교의 입학시험 문제를 몇몇 사교육업체들이 입수 유포한 사건까지 터졌다. 그 업체들은 이번 한번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꾸준히 시험문제들을 유출시켜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재미있게도 이러한 사실이 보도된 이후 문제의 업체에는 더 많은 고객들이 몰려드는 중이란다.

2005년 OECD에서 가입국가들을 대상으로 국가별 학생들의 수업시간 대비 문제해결능력 점수를 조사한 적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할수록 문제해결능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학교수업시간이 적은 나라의 청소년들일수록 문제해결능력 점수가 높았다. 청소년의 문제해결능력이 가장 높은 나라들인 핀란드, 뉴질랜드, 일본, 벨기에 등은 모두 주당 수업시간이 35시간 이내였다. 심지어 핀란드는 주당 수업시간이 30시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해결능력 점수는 최상위권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35시간의 150%에 가까운 주당 50시간이라는, 가입국 중에서는 가장 긴 수업시간을 자랑한다. 학교수업시간도, 사교육시간도,보충수업시간도 우리나라가 제일 많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수업시간의 압박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공부에 관련된 통계 중에서 OECD 평균보다 낮은 부문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주당 숙제시간이다. 다른 학업활동과는 달리, 숙제는 스스로 하는 학습활동이고 요즘 교육정책담당자들이 좋아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의 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주도적 학습인 교과수업이나 사교육을 지나치게 많이 베풀어주느라 너무 바빠서 정작 자기주도적 학습의 시간을 베풀어줄 여유는 없는 것이다.

타인주도적 학습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사교육업체의 서비스이다.
사교육업체의 서비스 방식이 다른 교육기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사교육 업체에서는 정답을 중심으로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정답은 모든 생각과 탐색과 교육의 종착점이다. 정답을 알고 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사교육업체를 교육기관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사교육은 교육을 종료시키는 서비스라고 해야 한다. 정답을 찾고 나면 더 이상 생각하거나 판단하거나 탐색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성배를 손에 쥐었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이제는 그저 그 성배를 잃어버릴까 소중히 부여잡고 집착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앞서의 학원이 성공한 비결은 그것이다. 기왕에 정답을 알려주는 서비스라면 보다 정확한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정답에 이르는 탐색과 숙고의 과정(그것이 진정 교육이건만)은 최대한 생략하고 바로 성배에 해당하는 답안지를 어떻게든 입수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야 말로 학원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궁극적인 서비스였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타인주도적 학습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사회에 나서면 갑자기 끈 떨어진 연처럼 방향을 잃거나 다시 누군가 자기를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종종 접한다. “학교에서 숙제가 주어졌는데 이 주제에 대한 답안을 빨리 좀 보내달라.” “무슨 내용에 대해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해당 자료를 좀 정리해서 보내달라.” 같은 식의 자기가 직접 공부하고 조사해서 해야 할 일을 온전히 남에게 의지하는 질문들은 보통이다. 심지어 “자기 키가 몇cm이고 체중이 몇 kg인데 이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추천해 달라,”는 식의 자기의 취향마저 남에게 의지하는 질문들까지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내어준 숙제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발표도 남의 대본대로 하고, 심지어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스스로 판단하려는 노력을 거두어버린 아이들이다. 네이버 지식in이 유명해지던 시절부터 이런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in은 일종의 정답창고로 기능했다. 청소년 네티즌들은 무슨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생각하거나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네이버 지식in에 접속해서 답변을 검색했고 그 답변이 정답이라고 믿고 남들에게까지 전파했다. 어릴 적부터 정답만을 알려주는 서비스에 익숙한 아이들은 실제 세상에도 정답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나에게 옳은 것이, 나에게 최선인 선택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렇게 다양한 것이 당연하다. 똑같은 키와 체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셔츠가 최선의 정답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학교에서 내게 숙제를 부여하는 이유는 그 숙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자료를 탐색하고 그 자료 중에서 주제와 관련되면서도 믿을수 있고 참신한 정보를 골라내고, 그것들을 자신의 틀에 맞추어 재구성을 하는 법을 배우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답을 말하는 것이 숙제의 목적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여러 가지 정답을 저장하는 창고일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평가하고 선택하는 탐색선이다. 그런데 지금 정답만을 가르쳐주는 세상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탐색선의 기능은 잃어버리고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정답만을 갈구한다.

물론 정답을 가르쳐주는 서비스가 사교육업체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초중학교 시절에 모든 정답은 ‘전과’ 속에 있었다. 그 당시 학생들도 스스로 탐색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숙제만 주어지면 곧장 전과를 폈다. 아마도 선생님조차 전과를 보고 시험문제를 내시는 듯, 말 그대로 모든 과제와 숙제의 정답은 문제의 전과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전과는 우리 학습의 일부만을 담당했다. 멍하니 앉아 강사의 열변만을 들어야 하는, 일방적인 강의실 분위기는 곧 학생들의 농담이나 딴 짓으로 와해되곤 했다. 여전히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공부했으며 자기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는 경험을 했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렇게 일방적인 교육으로 길들여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타인지향적 학습시간이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세계 1위권의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전 세계 교육학자들에게 우리나라는 매우 특이한 사례(outlier)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최소한 지금 대학교에서 터져나오는, "신입생들의 학력이 저하된다"는 불평은 평준화 교육의 결과라기 보다는 학원에 의해 길들여져서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잊어버린 결과가 아닐까. 그러니 이제라도 학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정답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댓글목록

가을님의 댓글

가을 ()

정말로 공감하는 바가 큰 글입니다.
저또한 문제해결능력의 차이에 대해 큰 차이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미련없이 한국을 등지고 힘든 타지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구요..
여기서도 초심을 잃지않고,여유있게 스스로 공부하게끔 아이를 유도하려고 노력많이 합니다.
우리아이는 책에서 지식을 많이 얻고,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맘껏 운동하고,게임도 하고,사랑하는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는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신호가 바뀔까봐 조바심내지않고,다음 파란신호에 여유있게 지나가는 어른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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