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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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우리몸은 스스로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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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앤디0312 (cb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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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3-07-22

본문

오늘 모임에서 말씀드린 김철 선생님의 프레시안 기고문을 올립니다.
2006년 글이네요...
전체를 보시고 싶은 분은 다음 링크를 보십시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50402091533&S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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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의 몸살림 이야기<1> 우리 몸은 스스로 낫는다
  
  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병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스스로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 왔다. 필자가 도와주고, 아픈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면 아무리 난치로 알려져 있는 병이라 하더라도 대개는 쉽게 나았다. 이때 필자가 한 일은 스스로 낫게 돼 있는 것을 모르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스스로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것뿐이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허리를 세우고 가슴만 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우리 몸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고관절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것만 제대로 하면 우리 몸에 오는 병의 90% 이상은 예방이 되고, 설사 큰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대개는 스스로 낫게 돼 있다.
  
  앞으로 연재할 이 글의 핵심적인 내용도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몸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이 자세를 취하지 않았을 때 우리 몸에 어떤 반응이 오고, 이 자세를 취했을 때 어떤 이로움이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 자세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자세만 제대로 취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몸이 가뿐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
  
  이 연재물을 읽어 가다 보면 최소한 자기 몸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자기 몸을 알면 몸이 잘못됐을 때 해결책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몸을 모르기 때문에 몸이 잘못됐을 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라고 하면서 자기 몸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많다. 알아 봐야 얼마나 알겠느냐는 것이다.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한다. 라디오도 고장나면 전문가에게 맡기는데, 사람의 몸이야 말해 뭣하겠냐는 것이다.
  
        
ⓒ프레시안        

  그러나 필자는 달리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몸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몸은 바로 자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자기 몸과 바꿀 수는 없다. 그 귀한 것을 남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손놓고 앉아 있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니 내 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알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몸은 아주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구조로 돼 있다. 바로 생명으로서 전체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원래 진리는 간단한 법이다. 쉽고 간단한 몸의 원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복잡한 화학기호로 몸을 설명하니까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 몸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보면 그 원리는 의외로 너무나 간단하다.
  
  이는 실제로 불치로 알려져 있는 병에 걸려 있는 사람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스스로 나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입증이 된다. 몸살림 운동법에서 복잡한 것은 하나도 없다. 복잡하게 보거나 복잡하게 다루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몸만 펴면 백 가지 병이 물러간다. 약 안 먹고 수술 안 해도 병은 스스로 물러간다.
  
  건강은 스스로 챙기는 것이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건강해지는 것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간단한 운동법이 간간이 나올 것이다. 간단한 운동법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보지 말고 함께 따라서 해 주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운동만 열심히 해도 내 몸의 건강은 보장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위력적인 건강법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서 필자에게까지 전수되고, 덕분에 또 필자가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하게 감사한다. 30년 전 오대산 자락 움막집에서 필자에게 가르침을 주셨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꿈에 나타나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는 무애(無愛) 스님께 다시 한번 돈수백배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인연의 끈
  
  지금이야 필자도 이렇게 점잖은 사람인 것처럼 폼도 잡고 사람들도 도와주곤 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필자가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아무리 자신의 과거를 미화시키려고 해도 필경은 다 탄로나게 돼 있다. 지금도 얘기하자면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필자는 젊었을 때에 망나니처럼 살았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떠돌며 살았다.
  
  1974년 군대를 제대하고 필자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마음 둘 데를 몰라 방랑자가 돼서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하루는 횡성에 갔는데, 마침 오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하릴없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팥고물을 넣은 수수떡을 팔고 있었다. 필자는 수수떡을 굉장히 좋아하는지라 한 접시 사서 먹고 있는데, 떡장수 아주머니가 혀를 차면서 “젊은 총각이 몸이 말이 아니구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사실 그때 나는 몸만 말이 아닌 게 아니라 마음도 말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이 아주머니는 어떻게 사람 몸을 보고 금방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아주머니가 무애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무애 스님은 총각을 고쳐 줄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떠돌고 있는데 잘됐다 싶어 바로 스님의 거처를 물어보았다. 평창의 진부에서 다섯 정류장을 가서 내려 거기에서 또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스님을 찾아나섰다.
  
  스님의 움막집을 찾아갔을 때는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스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뭐 하러 왔어?” 하고 물었다. 나는 몸을 고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뭔가 번쩍 하는 것 같았는데, 눈을 떠 보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하늘의 별이 저렇게 벚꽃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듯 땅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신은 맑고 별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스님이 옆에 계시다가 “잘 잤어?” 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물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내가 왜 여기 쓰러져 있었던 것일까? 나도 싸움 깨나 한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촌구석의 노인네한테 어떻게 맞았는지 연유도 모르고 기절해 있었던 것일까?
  
  까치독사에 물린 사람을 고쳐 주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무애 스님은 필자의 귀 위 오른쪽 독맥을 순간적으로 쳤던 것이다. 당시 내 목은 심하게 접질려 있어 신경이 꽉 막혀 있었다. 이때 이 독맥을 치면 사람은 누구나 다 기절하게 돼 있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필자를 기절시켜 놓고 여기저기 전부 틀어져 있던 몸을 바로잡아 주셨던 것이다.
  
  필자가 깨어났을 때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스님께서 접질린 목을 바로잡고 왼쪽 귀 위의 독맥을 쳐 시신경을 풀어 주셔서 눈이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맑아진 것 역시 접질린 목을 바로잡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 귀 위의 독맥을 풀어 주셔서 두뇌로 가는 신경이 트였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있으려니 밖이 소란했다. 사람들이 리어카 하나를 끌고 왔는데, 거기에는 다리가 팅팅 부어 바짓가랑이의 천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사람 하나가 누워 있었다. 아침에 밭에 나가다가 까치독사에 물렸다는 것이었다. 물리면 바로 죽는다는 그 무서운 까치독사에 물렸다는 것이었다.
  
  스님께서는 상당히 서두르는 눈치였다. 바로 바지 밑단을 두 손으로 잡고 위로 쭉 찢어 버리셨다. 정강이에 독사한테 물린 이빨 자국이 나타나자 스님께서는 그 자리를 칼로 쭉 째셨다. 그리고는 바로 입을 갖다 대고 독을 빨아내기 시작하셨다.
  
  필자는 이때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독사에 물리면 그 물린 자리를 째고 독이 들어 있는 피를 빨아내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피를 빨아내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스님께서 피를 빨아내는 동안에 한 번도 입을 떼고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 10분 정도를 숨 한 번 내쉬거나 들이쉬지 않고 계속 빨기만 하셨다. 그리고는 불룩한 입에 가득한 피를 뱉어내셨다. 시커먼 죽은피가 땅위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또 스님은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급히 풀을 뜯어다 짓이겨서 무슨 가루와 섞어 조그마한 전처럼 만들어서 물린 자리에 붙이고 천으로 싸매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풀은 머위였고, 그 가루는 명반이었다.
  
  이후 한 시간쯤 지나자 뱀에 물린 사람의 다리는 거의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자 스님께서 “됐다. 돌아가라”고 하셨다. 뱀에 물린 사람은 약간은 절뚝거렸지만, 리어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나갔다.
  어제는 나를 한 방에 까무러치게 하더니, 오늘은 숨 한 번 안 쉬고 피를 빨아내고 물리면 즉사한다는 까치독사에 물린 사람을 바로 살려내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하셨다. 도대체 이 영감님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능력을 보이는 것일까. 나는 이것이 궁금해졌다. 며칠 지내면서 한번 보기로 했다.
  
  아카시아 침 하나로 무통분만을
  
  그러고 사나흘이 지났다. 나는 원래 한 곳에 가두어 두면 참아내지 못하는 성격이 좀 급하고 팔팔한 사람이었다. 내 몸을 고치겠다고 해서 오긴 왔지만 스님과 함께 이 첩첩산중에 있다는 것이 공연히 따분해졌다. 그런데 이 날 산 밑의 동네에서 연락이 왔다. 산모가 산기를 느끼고 있으니, 스님께서 와 주셔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내게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스님께 “저도 함께 가면 안 돼요?”라고 하며 함께 가기를 청해 보았다. 호기심이란 게 다른 게 아니고 애를 받는 것을 보게 되면 여자의 성기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어린애 같은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스님의 답변은 선선하게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마을에 당도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산모의 집 마당에 모여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곳과 몇몇 주변 마을에서는 산모가 산기를 느낄 때가 되면 항상 이렇게 스님을 부르고 모여 있는 것이 관례가 돼 있었다. 요새처럼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님을 모시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마을 축제였다.
  
  스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산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스님과 나, 그리고 할머니 한 분밖에 없었다. 스님께서는 산모를 의자랄 것도 없는 의자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게 하셨다. 둥그렇고 좀 두꺼우며 의자 길이 정도 되는 통나무였다.
  
  나는 한층 호기심이 발동했다. 뭔가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산모는 넓은 광목 천을 가슴부터 발목까지 두르고 치마를 벗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는 통에서 기름때에 절은 아카시아 가시를 하나 꺼내셨다. 그 가시를 머리에 문질러 소독을 하셨다. 요새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머리에서 나오는 기름은 탁월한 소독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옛날에는 촛불이나 등잔불에 그슬리는 것과 함께 머리로 문질러 주는 것이 침을 소독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이 가시침을 흉추와 요추 사이에 꽂았다가 뺐다. 그리고 산모에게 힘을 주라고 했다. 산모가 힘을 주니 금세 아이가 머리를 세상 밖으로 내미는 것 같았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양손으로 가볍게 무릎을 툭 쳐서 더 벌려 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밑으로 뚝 떨어졌다. 스님은 이 애를 잽싸게 받아서 기다리던 할머니에게 전해 주었다. 할머니는 준비해 두었던 더운물로 아이를 씻겼다.
  
  이것이 스님의 무통분만 시술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 고통 없이 산모는 아이를 낳았다. 무릎을 툭 쳐 준 것은 아이가 나오다가 잠시 어깨가 걸려 있는 것을 풀어 주는 것이었다. 나는 또 한번 놀랐다. 도대체 이 영감님의 손놀림과 그 결과는 나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병원 가서 애를 낳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아이 하나를 낳으려면 적어도 몇 시간, 많으면 하루 이상을 산고와 싸워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고통 없이 애를 낳을 수 있다니…….
  
  따분하다는 생각도, 어린애 같은 호기심도 싹 가셨다. 이 영감님하고 함께 더 있으면서 배워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줄이려면
  
  한국은 세계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다. 미국에서는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권하는데,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 배를 가르고 애를 빼내는 일은 마지막으로 정 안 될 때 사용해야 할 방법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조금만 애가 나오지 않아도 무조건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 강남의 모 병원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비율이 85%에 이른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전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수술을 하고 애를 낳는 비율이 높은 데는 병원에서 수입을 올리고자 수술을 강권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애를 낳을 때 잘못된 자세를 갖게 하는 것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산기를 느낄 때에는 절대로 산모를 눕혀 놓아서는 안 된다. 누워 있으면 발을 아무리 벌려 봐야 저절로 나오는 애도 걸려서 못 나오게 된다. 스님께서 사용했던 방법대로 둥그런 의자에 엉덩이 끝만 살짝 걸치고 앉는 자세를 취하면 애는 쉽게 나오게 돼 있다. 애가 밑으로 떨어지도록 해야 저절로 순산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좋은 방법이 많았는데, 무조건 서구의 문물을 숭상하면서 오히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서양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사고는 이제는 정말로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시점이 됐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것에 무한한 지혜가 들어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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