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동호회(테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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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니스는 인생의 보약 (한국 테니스 에세이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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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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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는 나의 무기, 생활의 활력소!!”

내 어린 시절은 조그만게 참말 바빴었다.

공부하느라 바빴던게 아니라 놀기에 바빴던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이골목 저골목을 헤집고 다니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놀다보면 가끔씩 읍내에서 연탄가게를 하시는 고모님과 고모부님을 만나곤 하는데 리어카를 밀어 드리기도 하고 잔 심부름도 하면서 도와 드리곤 했다.

연탄대리점을 운영하시는 고모님이신지라 평소엔 늘 새카맣게 더럽혀진 옷매무새와 검은칠이 군데 군데 묻은 모습이셨다.

하지만 그 고모님은 주말이면 산뜻한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에 라켓가방을 싣고 근처 여학교로 테니스를 치러 다니곤 하셨다. 그 당시만 해도 조그만 시골 읍내에 사설코트는 없었고 대체로 각급학교에나 테니스장이 있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번 부딪힌 고모님은 일상에 찌든 읍내 ‘연탄가게 아주머니’가 아니라 ‘세련된 여성’으로서 내게 새롭게 비쳐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테니스라고 하는 운동에 최초로 관심을 가지게 되고 동경하게 된 첫번째 이유일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고모님을 통하여 테니스라는 운동을 알게 되고 막연히 참 재미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삼학년이 되면서, 창 밖으로 늘 보이는 테니스장과 테니스부 여학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보면서, 나를 테니스부원으로 뽑아주지 않은 체육선생님을 공연히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테니스라는 운동에 눈도장만 찍어놓고 세월이 흘러 사회인이 되고 첫 직장, 첫 월급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한일’ 우드라켓을 덜렁 사버리고 말았다. 거금 삼만오천원… 어떤 라켓이 좋은건지 내게 맞는 라켓이 어떤건지 알리도 없이 무모하게 거금을 쏟아 부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막연한 열정은 정말이지 테니스는 내게 무슨 운명 같은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호기있게 라켓을 구입한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 꿈의 취미생활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를 몰라, 거의 육개월 정도를 벽에 걸어둔 라켓을 감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회사 테니스장에는 코치 선생님도 없었고 동호인들끼리 서로 공을 던저 주거나 바구니공을 밀어 주면서 운동들을 하고 있었는데, 감히 어떻게 끼어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용기를 내어 라켓을 들고 테니스장 언저리에서 얼쩡거려 보아도 아무도 쳐 주지도 않았고, 쳐다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때는 좀 서럽기도 하고 오기도 생기기도 했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테니스장이 보이면 눈길주기 바빴고, 길가다 테니스장이 보이면 한 참을 구경하고 나서야 가던길을 갈 정도였다.

라켓을 사놓고 그렇게 반년 가까이 시간만 보내고 있던 중, 회사 테니스장에서 고수 처럼 보이는 멋진 아저씨 한분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친구 언니의 약혼남이셨던 분이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연습공 250개를 사오면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너무 기뻤지만 공 250개를 사려면 상당히 부담이 되었던지라, 난 친한 친구들 다섯명을 설득하여 함께 배우기로 하고 돈을 갹출하여 연습공 250개를 구입했다.

'이제 드디어 꿈이 이루어 지는구나' 싶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새벽6시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테니스장에 도착하여 친구의 예비형부인 ‘코치님’과 친구들을 기다리며 스윙 연습을 하거나 벽치기를 열심히 하곤 했다.
테니스를 처음 정식으로 배우던 그 시절 정말이지 너무 재미 있어서,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 테니스코트가 그려질 지경이었으니 병 치고도 다시 못 고칠 병에 걸려 버린 셈이었다.

그 때 함께 했던 친구들은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 버리고, 채 일년이 되지 않아 나 혼자 남겨지게 되었지만, 그 때는 테니스장의 모든 분들과도 친해져서 많은 고수분들이 공을 던져주고 가르쳐 주었기에 나로서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 친구의 예비형부이셨던 최초의 내 사부님은 얼마후 인사도 드리지 못한채 헤어져 소식이 끊어졌지만, 지금도 그 분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 초라한 글 속에서나마, 내게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또 약간의 세월이 흘러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도 자연스레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자기가 나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준 것 처럼 이야기기 하지만 실은 내가 남편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남편의 테니스 실력은 동네 중하급 수준인데, 열심히 하면 많이 늘 실력인데 열심히 하지를 않으니 실력향상이 되지 않는것 같다.

큰애가 일곱살, 작은애가 다섯살이 되었을때 신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단지내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게 되면서 본격적인 나의 ‘테니스 인생’이 시작 되었다.

테니스장에서 정식으로 레슨을 받고 회원들과 어울려 끝없이 연습하고…… 때로는 코트에서 맛난 음식도 해 먹으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으레 집이 아니라 코트장으로 “엄마!”하고 부르며 달려오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 진다. 나의 테니스 열정과 남편의 적극적인 응원덕분에 내 테니스 실력은 날로 향상 되어 갔고 마냥 행복했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남편이 잘 다니던 공직에 사표를 냈고 그간 근무하며 준비하던 그 무슨 고시인가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 지고 아무 생각도 없던 나에게 남편은 내게 어떤 일이 있더라고 내가 테니스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내게 삼년 기한을 약속했고 나는 삼년간 테니스를 접기로 했다. 그러나 운명은 남편의 뜻과는 달랐나보다, 삼년간 밤잠 없이 노력했지만 남편은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하였다. 그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먼지가 소복이 쌓인 라켓가방을 깨끗이 씻어놓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가방 깨끗이 씻었네…” 라며 힘없이 말끝을 흐린다.

“아니 그냥 좀 씻어 놓을려고……”난 억장이 무너짐을 느끼면서도 라켓가방을 씻고야 말았고 라켓의 거트들을 새로 매었다. 며칠뒤 그 가방을 메고 동대구 시장 인근 테니스코트를 찾아가던 날은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던지……첫사랑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 이런것일까 싶다.

남편이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고 이제 다른 길을 가게 되면서 나도 더불어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테니스는 내 삶의 활력소이자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테니스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더 부지런하였고
테니스를 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으며
그래서 삶이, 인생이 힘들지 않고 즐거울 수 가 있었다.
살이의 팍팍함 속에서도 테니스로 인해 웃을수 있었으니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닐수 있겠는가.
다시 태어나도 테니스를 배울 것이고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으니 또한 행복한 일이다.

지난 여름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해군에 가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람은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생활이 꼭 한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그 취미 생활이 살아 가면서 힘들때는 보약이 되고 기분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엄마는 테니스가 보약이었고 애인이었다고.....

2007년도 소양강배 국화부 준우승~~ㅎㅎ~~^^
2007년도 동운배 국화부 우승
정민숙언니와 국화부에서 영광스럽게도 우승을 하였다.

시합을 다니면서 국화부에서 유명한 정민숙언니가 우리 혜성여자중학교의 선배님이라는걸 알게되었고 늘 자랑스러웠다.
선배님이랑 동운배 시합을 하던날 32강에서 위기가 왔었다. 그때언니가 해준말 "미선아 에이뿔한테 공을 주면 우리가 진다"  라고  충고를 해주었고 그때부터 철저하게 난 국화부 비우승자를 집중적으로 공략,  탈락위기를 면하고 16강, 8강,4강 드디어 결승진출, 결승에서는 최돈옥언니와  대결을 하였고
타이브렉에서 이겨 드디어 어렵게 우리가 우승을 하였다.

"우승"
"여보 나 우승 먹었어요"우승의 승전보를 알리자, 남편은 "진짜야.! 고생했다. 축하해. 내가 데릴러갈까? "라며 너무 흥분된 목소리로 기뻐해 주었다.
동운배 시합날 아침에 도시락을 준비하는데 남편하는말 "내 이름이 동운이잖아 오늘은 왠지 동운배에서 우승할것같으니 잘하고와라"
'동운배'가 남편이름이랑 같아서인지 느낌이 좋았었는데 정말 우승이라니.!
 우승은 늘 기분좋고 행복한 거 였다.
부족한 나를 흔들리지 않도록 끝까지 믿어주고 우승까지 이끌어준  정민숙언니에게 감사를 드린다.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에도 참 감사하다.

개나리부 우승도, 국화부 준우승도, 국화부 우승도, 모두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에서 했고 
그 우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은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저한테 공을 쳐 주시고
즐거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테니스를 사랑하는 모든 동호인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안양무지개클럽       박 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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