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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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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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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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때니만큼  많은 한국 친구들이 해외생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전에는 그냥 단순 동경이나  자기랑 틀린 삶에 대한 호기심이기에 나도 가볍게 우스게 소리로 대충 재미있게  해외생활을 이야기 해주었지만  지금은 조금 심각하게 꽤 세밀한 부분까지  물어보는 것을 봐서는  상대가 일종의 진로 결정을 하는데 참고사항을 하려는 것이므로  진지해질 필요성과 함께  내 메세지가 잘 전달되어야 겠구나 하는 부담감이 생긴다.

어떻게 해야 해외생활을 쓸데없는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감을 잡을수 있게 전달할까를 혼자서 머리를 짜다가  요즘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들이 아직도 서있는 시간보다  기는 시간이 더 많을 시절,  소리라고는 사람소리라기 보다는 동물소리에 더 가까운 소음으로 본인은 진진하게 의사를 전달하는데 사실 어른들이 추측으로 의미를 해석해야 할 정도의 나이일때 ,  바로 옆집에  우리 아들과 거의 같은  나이의 아들네미가 있었다.  물론 그놈의 싱가폴 토종이고.

가끔 우리집 현관을 지나서  오가는 옆집놈만 보면 우리 아들이  문에 철망을 잡고서 으르릉 거렸다.  그러면 옆집 꼬마놈은  서럽게 울면서  쫒겨갔다.   옆집여자 앞에서는 “그러지마, 얘가 왜그래? – 우리아들에게 엄한 소리로.   울지마라 얘야- 친절한 소리로 옆집아들에게 “ 하고 천사표 노릇을 했지만   솔직히 속으로  입이 찢어지게 흐믓했었다.
‘역시 우리 아들이 쌔구먼.  그냥 소리만으로도  옆집놈의 기를 제압하네’  하고 푼수엄마는 행복 했었다.

근데 어느날 우리 아들을 데리고 그 옆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 꼬마놈이  집안 어디선가 에서  재빨리 현관으로 나와서 우리 아들을 보며 으르릉 거렸다 .  그랬더니.  기가 센놈으로 옆집 아들놈 정도는 상대도 안되는 줄  알았던 우리 아들이  나를 붙들고 아주 서럽게 울어서  결국 우리는 패잔병처럼  집으로 돌아왔고  집에 와서야 아들은 울음을 끄쳤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들의 기가 세서 옆집놈을 이긴것이 아니라 자기터이기에 기를 높힐수 있었다는 것을.   옛말에 똥개도 자기터에서는 한개 먹고 들어간다지 않는가?

이게 바로 해외생활과 본국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해외로 나와서  남의 터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전부 포기하고 이미 그땅의  기득권을 가진자와 겨루며 정말 처음부터 시작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해외에 나와서야  내가 얼마나 본토에서 누리는 것이 많았는 가를 정말 뼈에 저리고  가슴에 사무치도록 피부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느끼고 살게된다.
그래서  home sick 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내땅에서는 누릴수 있는 것에
대한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입이 제일 서러워 하고 힘들어 한다.
계절이 바뀔때 마다 , 몸이 안좋을 때 마다 ,  처음엔 식사때 마다  두고온 음식에 대한  향수와 미련은  강한  타향살이 애수에  정말  큰한몫을 한다.  밤에 잘때 꿈도 먹는 것을 꾸니까

봄에는 꼬들빼기 김치에서 쑥국까지.  다래 무침은 또 어떻고.
여름에 시원한 열무김치에 비벼먹는 찬밥.
가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과일과  음식들
겨울에  골목마다 풍겨나오던  청국장 냄새 와 담마다 걸려있던 시래기 뭉치  등

남의 말은 왜그렇게도 어려운지.   말 못해서,  말 못알아 들어서 당하는 설움은 정말 가슴에 포한이 지도록 두고두고 사람을 주눅들이고  힘들게 한다.

틀림 없이 저놈보다 내가 더 이건에 대해 많이 아는데  고놈의 유창한 언어 실력때문에 밀려야 할때.   정말 가슴이 뻐근하도록  생존경쟁에서 밀리는  설움을 삼켜야 한다.   더 환장할때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한국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할때 단지 말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탁구경기 보듯 오가는 말을 잡지 못하고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다가 돌아 올때는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죽고 싶었다.   어느 세계대회에 나가서  예선통과도 못하고 돌아가는 국가 대표 선수  심성은 될것도 아니게 정말 창피하고 미안하다.  한국인 모두에게.

사람은 또 왜그렇게 틀린지.   세상사람 다 똑같지 뭐는. 지금 외국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  이제야   겨우 나오는  체념의 소리이다.   사람,  틀리다.  누가 사람은 다 똑같다고 하는가?
절대 틀리다.  한국인은 한국인이지  절대 싱가폴인이나  다른 인종이  아니고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되는 것 처럼.  외국인도 아무리  배짱이 맞는 사람도  외국인 중에 그렇다는 것이지 어떻게 한국인의 그 섬세한 정서 하나하나를 이해할수 있는.  이심전심이 되는 같은 나라 사람과 같은 것을 요구할수 있겠는가?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가끔 돈 싸들고  외국여행 몇달씩 다닌 팔자 좋은 친구나   애들 끼구 외국에서 1-2년 동안 어학연수하고 돌아온 친구들이  그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하고  신사적인가를 이야기 할때는 정말 속이 니글거리다 못해 그 무식함에  더 이상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건  그야말로 돈을 풀러 간 그나라 입장에선 봉인데  당연히 친절하고  우아하게  이야기가  진전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밥그릇 싸움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그런 나라 사람들이 살벌해 지는지는  정말  해외생활을 한사람들은(놀러나 바람쐬러 온 사람이 아니) 신물나게 겪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사람이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도  너무 순진한것 같다.  더 악착같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렵다.  어떨땐 누워 자면서도 온 근육이 한국에서 처럼 진정한 relax 가 안되는 것을 느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기후에서,  다른 나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어설픈 언어로 전혀 틀린 문화속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하루하루가 진지한  전쟁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친구들에게 나오라고 한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고..
어차피  독불장군으로는 안되는  국제사회이니  먼저 나와서 먼저 자리 잡는 것이 하루라도 빨리 기득권을 잡는  현명함  같아서.    특히   외국에서 2등 국민으로 살아가지 않을려면  싫던 좋던 하루하루가 진지하게 채워져야 하니 그 또한 사는 재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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