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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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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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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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을 부수고 날자-    

한 쌍의 늙은 새가 새장에 갇혔다.
콘도라는 작은 철장에다
싱가포르라는 거대한 울타리에 갇혀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늙다리 새는 이미 오래전에 사랑의 노래도 잃어 버렸다.
답답하다 못해 신경질이 나도록 게슴츠레한 두 눈망울만 마주 굴리고 있다.
새장을 빠져 나갈 궁리도 못한 채 그저 바깥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노부부의 정신세계다.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갈 곳도 오는 이도 없다.
절해고도에 버려진 적막감에 가슴이 후들거린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다.
날아야 한다.
새장을 부수고 날아야 한다.
저 드넓고 드높은 땅과 하늘이 내 앞에 있지 않는가.

우리부부가 산보를 한 것은 콘도에 이사한지 달포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던 저수지 공원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키 큰 열대수의 사이 길을 따라 들어가자 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갇혀 있는 물빛은 우중충 했다. 물결은 제법 일렁거렸다.  
산책로의 길켠엔 조정경기용 보트가 여러 척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저수지에 가득찬 물  한 가운데 조정 레인이 쳐져 있다. 선착장도 있어 이곳이 조정경기장임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취수장도 보이고 낚시꾼도 있다.
‘아 하 이게 바로 다목적 저수지로구나.’하면서 헷갈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낚시와 취수장 그리고 조정경기장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나의 감성이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아내의 눈길은 전혀 다른데 있었다.
나무에 나무가 꽈리를 틀고 기생하는 나무, 살아 꿈틀거리는 용의 등골 같은 나무뿌리가 아내의 발길을 붙들었다. 그토록 신기하였던지 온통 혼이 빠져있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면 벌금 500달러라는 경고판도 재미있다. 벌금형이 많기로 이름 날만한 증표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과 입맞춤하고 있었다. 아내는 싱가포르의 모든 환경이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20년 전 친구들과 관광 왔을 때 가이드의 설명을 그대로 옮겼다. 그 때도 시내는 깨끗했으나 썰렁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빈틈없이 번성해 졌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갈라진 것은 불과 43년(1965년 8월 9일)전이다. 사람으로 치면 한참 젊은 나이다.
조정경기장의 주변 화장실은 샤워시설도 갖춰져 있어 산책객들도 공유할 수 있었다.
저수지 절반도 가지 못하고 되돌아섰다. 너무 멀어 보여 제풀에 질렸고 다리도 아팠다.
오늘은 탐색전으로 만족했다. 우선 샌들을 신은 차림새가 산책이나 운동자세가 아니었다.
내일 아침 손자들의 등교시간에 한 바퀴 돌자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아침운동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6시 30분 손자들의 등굣길에 함께 나섰다. 손자들이 버스에 올라 손 흔드는 모습을 뒤로하고 곧바로 저수지로 향했다.
운동화 끈도 단단하게 줄려 맸다. 반소매 반바지 차림도 가볍다.
어제 미쳐 못 보았던 이정표는 4.3Km를 가리키며 서 있다.
이른 아침 중국인으로 보이는 나이든 한 무리가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었다.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인다. 소림사 무술 같은 몸놀림이 재미있다.
발바닥 밑에서 사근사근하게 씹히는 모래알이 정겹다.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저었다. 제법 폼이 났다.
엉덩이가 엄청 큰 키 작은 여자,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자, 웃통을 아예 벗어버린 팬티차림의 젊은이들, 다리에 깁스를 하고 절룩거리면서 걷는 사람도 있다. 건강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어 인상적이다. 담소하며 천천히 걷는 노부부의 정겨운 모습은 동병상련으로 다가왔다. 이래저래 참 좋은 곳이다.
아내는 아무것도 못 본 척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옹기종기 맺혀있다.  운동효과가 손에 잡히는 듯 했다.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다리가 무거워 왔다. 그 간 운동부족이었다는 사실을 진단하여 주었다.  
바람을 휙휙 날리며 힘차게 뛰는 젊은이의 모습이 너무 부럽다.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삶 냄새 맡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했다.
우리도 한 번 뛰어보자며 뛰기를 시도했지만 아내는 단 5분도 버텨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좀 더 뛸 수 있어 체면치례는 하였다.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서 쉬었다.
선착장을 새로 만드는 곳도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는 일꾼도 있었다. 포크레인도 몇 대 있다. 행여 우리나라 대우가 만든 중장비가 아닌지 살펴봤으나 아니어서 실망했다.

이렇게 가지각색의 여러 모습과 맞닥뜨리고 수 없이 많은 상념에 휩싸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십리 길을 완주했다. 아직도 한참 걷을 수 있고 때로는 뛸 수도 있다는 자신감은 이날 아침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한 시간이 거렸다. TV에서는 아침마당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아침 밥상을 챙겼다.

그 다음 날이다.
어제보다 더 힘차게 걷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옷을 입었다. 소매 없는 짧은 셔츠에 꽃무늬가 아름다운 팬티는 한결 젊고 발랄해 보였다. 거기에다 울긋불긋한 스카프까지 두르니까 패션쇼를 방불하게 했다.
언제 어디서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평소 내가 늘 아내에게 멋을 내라고 부추기는 입장이어서 흡족했다.  
길섶을 알고 보니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반 바퀴를 돌고 있을 쯤 옆을 스치는 엄마의 냄새가 내 나라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체면불구하고 ‘혹시 한국..’말을 거는 순간 그녀가 먼저 ‘한국에서 오셨느냐’며 반겼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윗 층에 사는 분이라는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실감난다.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은 아내였다. 못내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아내가 실컷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나는 몇 발취 앞서 걸었다.
곧 한통속이 된 듯 주고받는 담소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우리의 교향 땅, 그 고향사람들을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만나는 기쁨을 어이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외국에서 동족을 만나고 정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상상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반가움이야 열 번 스무 번을 말한들 어찌 지겨우랴.  
아내는 그 분을 두고 친절하고 교양 있는 엄마라고 매우 좋은 점수를 주었다. 남편은 우리나라 회사의 주재원이고 학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다는 정보까지 알고 왔다.
타국에서의 첫 만남은 가정사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뒤에 이 엄마로 하여금 많은 삶의 지혜와 정보도 얻었고 특히 아내의 교통사고 때 너무도 인간적인 정을 나누었던 사이가 되었다.>

그 한참 뒤,
아내가 오늘은 아스팔트길을 걸어보자고 했다. 줄곧 저수지 가장자리길만 다니다가 그 참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하고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좁다란 길이지만 한 가운데 흰 선으로 나눠져 있었다. 도보와 자전거 길로 구분지어 놓은 것이다. 젊은 남녀들의 자전거가 획획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달렸다. 물론 나이든 사람들도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어린이용 작은 자전거를 이곳 어른들은 잘 탄다. 손자용으로 사 두고 온 자전거가 생각난다.  
자갈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한데 사람들은 한번 선택한 길을 좀처럼 바꾸거나 버리지 못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안정성향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저 앞에 날씬한 아가씨 둘이 뛰어 온다. 하얀 얼굴에 세련미 넘치는 모습에서 한국 엄마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내도 그랬다. 무슨 말이라도 건너볼 양으로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런데 무색하게도 그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쳐 버렸다. 우리말을 하면서...
이 길을 다니는 엄마도 저 길만 고집하는 엄마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 하였다.
나의 “돌팔이 심리학”에서 보면 ‘산으로 오르는 남녀는 친구이거나 부부이고 바다를 거니는 남녀는 연인 사이다.’ 즉 현실적 이득(건강)과 이상적 분위기(속삭임)라는 차이다.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분위기에 무게중심이 더 나가는 젊은이가 틀림없다.
그 뒤 어느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횡단보도 앞에서 젊은 엄마를 만났다.
이 또한 웬일인가 우리 집 아래층에 살고 있는 기러기 엄마다. 우리 콘도에 무려 스무 가구도 더 되는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캄캄했다. 설렁 안다고 해도 그들이 찾아주지 않는 한 만나볼 수도 없는 노인네다.
어쨌건 이웃에 많은 동포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하고 행복했다.
머지않아 그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아침 운동은 우리에게 이토록 크나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늙은 새도 날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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