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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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국후..... 그래도 조금은.. 많이 그리운 싱가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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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녀 (diver2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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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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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남편의 고향에 머물게 된 저는,  아는사람 하나 없는 처음 싱가폴에 유학했을때와 별반 다를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곤 시댁식구들이 전부였고 어딜 혼자 가는것 조차 막막한 저한테는 그야말로 농촌으로의 유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막상 집에 혼자 며칠을 있다보니 첨 싱가폴 유학했을때가 떠오르더군요...

첨에 남편이 먼저 꺼낸 애들 유학얘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어차피 막내 학교 입학하면 하기로 했으니까 2~3년 먼저 한다고 생각하자 하고 오케이~를 한지 두주만에 학교 인터뷰 날짜 정하고 바로 싱가폴 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한국촌의 도움을 받아 무엇을 챙겨가야 하는지를 꼼꼼히 체크하고, 그렇게 해서 저와 애 셋의 짐은 무려 150키로가 넘는 이민가방 2개에 제일 큰 트렁크 두개, 그리고 베낭 주렁주렁~ 3년 전만해도 싱가폴 학생이 그리 많지 않았었는지 무게 재는데 많이 봐주더군요.
창이 공항에 도착해서 저 혼자서 그 큰 가방들을 찾아서 카트에 올리고 겨우 출구를 찾아 가디언을 만나 그렇게 싱가폴의 유학은 시작되었었죠...

다른분들과 유학생활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많은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너무나 좋은 주인 만나서 3년여를 집걱정 한번 안하고 무슨 때마다 먹을걸 사들고 오셔서 애들 주고 설날엔 홍빠오도 주시면서 이런저런 얘기 해주시던 그분들... 2년 후 재계약 할때도 시세보다 천불이나 싸게, 첨 계약때보다 거의 올리지도 않으면서 그것도 부담되면 그냥 살으라고 했던 분들입니다.
저도 남편이 올때마다 그분들 초대해서 한국의 김치며 삼계탕, 인삼차, 유자차 등등 대접하고 돌아가실때 한 짐 가득 드리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은 정말 친정부모님 같으신 분들이 지금 많이 그립기도 합니다.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했을때도 이번달 집세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서 그 주 일요일에 오셔서 바로 보증금을 주셨던,  마지막 가는날 열쇠받으러 오셔서 애들 용돈이며 제 용돈까지 챙겨서 주시면서 우리 가족이 공항가는 택시탈때까지 배웅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살던 집에 사시는 분들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주인분들꼐서 한국인을 다시 맞이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 한국분들이 들어가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돌아오는 날까지 좋은 분들과 저처럼 좋은 인연 맺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제일 첨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면서 전화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담에 싱가폴에 오면 꼭 호텔잡지말고 할머니 집에서 자고가라고 하시네요~^^
한국촌에 집주인에 대한 안좋은 글들이 올라올때마다 우리 주인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도 있는데.. 하고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지금에서야 그분들의 고마움에 이렇게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싱가폴에 살면서 참 많은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같은층에 살면서 서로 문을 열어놓고 자기집 드나들듯이 서로를 오가고 했던 싱가폴이웃부터 큰 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네 가족...3년간 테니스를 배우면서 친구가 된 코치 가족들...  물론 한국친구들도 잊을수 없는 그리운 친구들입니다.
서로 동병상련이라고 남편없이 이런저런 해결해야 할 일들 서로 도와가며 가족처럼 지냈고 맛있는거 서로 하나라도 나눠먹으면서 외로움 달래고 했던 시간들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추억인것 같습니다.

싱가폴냄새 가득~한 푸드코드에서 먹던 치킨라이스, 미고랭, 미시암, 커리헤드피시, 가야토스트랑 커피 등등... 한국에 오면 전혀 먹고싶지 않을것 같았던 싱가폴 음식들이 가끔 생각나더군요. ^^

대부분을 저 혼자 결정했던 싱가폴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선 남편과 같이 상의하고 또 모르는 지역이다보니 남편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처지가 첨엔 좀 답답하고 또 한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같이 수다조차 제대로 떨 친구하나 없는 여기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구요. 매일 일이며 친구들 경조사며 바쁜 남편과는 반대로 만날 친구도, 친정도 서울쪽에 있어서 자주 갈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게 없더군요...
지금 학교에서 중국어 갈키는거나 도서관 사서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저 또한 맘적으로 많이 우울했던것 같습니다. 요즘은 매일 출근하는 맘으로 11시까지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뭔가를 시작한다는건 생활에 활력을 주는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친구를 만들고 아는곳을 만들면서 점점 시골생활에 익숙해지고 있구요~
제 입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나도모르게 나올때 진정한 시골아낙네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싱가폴에서 외롭게 지내실 많은 어머니 분들... 힘 내시고요.. 모두 비슷하게 격는 과정인것 같습니다. 저도 첨엔 그랬던 시절이 있었구요. 밑에 글 올리신 분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힘 내세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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