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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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20)
  • 한국인 (jmhand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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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5-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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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글 읽으면서 어쩜 그렇게 생생하게 잘 표현하실까?
제가 느낀 첫입국때의 느낌,제가 느낀 살면서의 사소한 일상들 , 제가 느낀 쇼핑몰과 거리의 풍경들... 이런 것들이 할아버지가 묘사하신 그대로 였으니까요...
어떻게 할머니가 다치신 걸까 궁금했었지만, 할아버지 상처에대한 세속적인 호기심 같아서  스스로 꾸짖었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면서도, 큰일을 당한 가운데서도 , 현명하게 차분히 처리하시는 모습이 정말 어른이시구나 느낍니다.
일이 정리되고 까지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던 날-
>       (입원에서 수술까지)
>
> 엑스레이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안했다. 의사의 말대로 골절 정도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
> 엑스레이 촬영실에서 들어오라고 했다. 간이 덜커덩 떨어졌다. 얼씬도 못하게 하더니 무슨 큰 일이 생겨서 들어오라는 것이 아닌가? 벌벌 떨면서 들어갔더니 고작 한다는 말이 환자의 몸을 좀 잡아달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으나 다행이다 싶었다.
> 아내는 진통제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도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친 다리 쪽은 손도 댈 수 없다. 너무 힘들어 하는 아내의 얼굴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겨우 옆으로 돌려서 몇 판 찍었다.
>
> 밤 10시 반께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녀가 알린 모양이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급히 물었다. 목소리는 크게 떨리고 있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정말 크게 다친 것은 아닙니까?’라며 걱정과 확인이 뒤섞였다.
> 말끝은 엄청난 충격을 감당하느라 무진 애쓰는 음성이다. 내가 아들을 위로해야 하는 입장으로 뒤바꿨다. 엑스레이 결과를 보고 이야기 하자며 30분 뒤에 전화하라고 했다.
> 의사의 소견이 나왔다.
> 머리, 허리는 괜찮고 대퇴부 두 군데가 골절되어 세 동강이 났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없으며 수술을 하면 3일 뒤 휠체어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눈이 빠져도 그만하길 다행이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뜻이다. 그렇게라도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 아들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의사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내일 오겠다고 했다.
> 3일 뒤에는 휠체어를 탈 수 있다니까 한국으로 가서 우리나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으니 오지 말고 그쪽 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
> 입원수속창구로 갔다. 한참 컴퓨터 좌판을 치던 히잡 차림의 여직원이 입원보증금으로 SGD 6,045$을 내라고 했다.
> 입원비는 하루 257$이고 매일 진료비가 69.30$라는 것이다. 보증금은 1주일 치 정도라고 했다. 수술을 받게 되면 수술비는 물론 별도다.
> 어떻게 산출된 보증금인지 알 수가 없다. 내라면 내야 하는 어쩔 수없는 타국인일 뿐이다.
>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신용카드 결제를 하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가디언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집에 갔다.
>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손녀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며 어떻게 되었느냐는 눈치다.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안심하고 자거라.’며 다독거려 주었다.
> 카드와 홑이불을 챙겨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병원으로 달러갔다. 갔다 왔다 해도 15분 정도의 거리인데 앰뷸런스는 왜 그렇게 느림뱅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입원보증금이 납부되고 나서야 아내는 입원실에 들어 갈 수 있었다. 30여분 동안 응급환자용 베드에 실린 채 방치되어 있었던 셈이다. 머리맡에는 링거 팩만 발랑거리고 있었다.
> 돈 없으면 죽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 6층 입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에는 보호자도 함께 탈 수가 없었다. 가디언과 나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
> 입원실은 넓었다. 베드 6개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6인실인 것 같았다. 입원환자는 아내를 포함해서 네 명이다. 모두 여자들인 걸로 보아 여자 입원실이 분명했다. 대부분 나이 많은 환자들인데 피부색깔은 제 각각이다. 다민족국가임을 실감했다.
> 입원실에 들어가서야 아내는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이 애처롭다.
> ‘여보, 걱정했던 머리도 허리도 괜찮다니까 안심 해.’ 아내의 손을 잡고 애써 태연하게 위로했다.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의사가 왔다. 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어깨에 걸쳐서 의사인줄 알았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보고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물었다.
> 아픈지, 아프지 않는지를 묻는 문진이다. 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이 없는지 물었다. 혈압 약을 먹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 지금으로 봐서는 골절 이외에 더 다친 데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는 내일까지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괜찮겠지!?...
>
> 의사가 따라오라고 했다. 간호사실 안에는 의사와 환자 가족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미팅 홀이 있었다. 아내의 엑스레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스크린에 걸린 사진 설명이 시작됐다.
> 넓적다리뼈(대퇴골) 두 군데에 금이 나 있었다. 부려진 것(골절)이라고 했다.
> 치료법은 두 가지 옵션 가운데서 선택하라고 했다.
> 첫 번째 방법은 수술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낫게 하는 것으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오랫동안 누어있음으로서 당뇨 등 다른 장기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 두 번째는 수술인데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쇠붙이를 붙이는 수술이어서 과다출혈이나 신경손상을 가져 올 위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 확률은 1~2%라고 부연했다.
>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기간을 집요하게 물었다.
>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2주 정도이고 수술을 하면 1주일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수술 쪽으로 권유하는 뉘앙스를 느꼈다. 수술을 빨리 받으려면 여러 가지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검사는 받아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일단 검사를 해 달라고 하였더니 머리, 가슴 그리고 피검사를 하는데 내일 아침 수술 담당의사와 다시 상담을 하라고 했다. 수술여부와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의사의 섬세한 설명과 친절은 우리나라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시설이나 느림보 응급처치는 불안감을 주었다.
> 입원실로 갔다. 아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화장실에 갔다. 물을 틀어놓고 한참을 울었다. 조금은 시원했다.
> 아내에게 용기도 줘야하고 가디언 보기가 민망해서 얼굴을 씻고 아무렇지도 않은 낯으로 나왔다.  
> 문제가 생겼다. 환자 옆에 보호자도 잘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
> 입원환자는 전적으로 병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일수도 있겠지만 말도 못하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인 환자에까지 환자 혼자 있도록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 항의성 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준비해 갔던 홑이불도 가져와야 했다.
> 아내를 이국땅 그것도 병원에 홀로 두고 되돌아서야한다니 발걸음이 떨어질 리가 없다. 아무리 망설어도 함께 있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 아내는 내일 아침 손자들 학교도 보내야 하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 하기는 그렇다.
>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어차피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거역하겠는가?’ 이대로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고 했다. 아내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병원을 나선 시각은 밤 3시다. 가디언 승용차편으로 집 앞에 내렸다. 내일 출근해야 할 사람을 야밤삼경까지 붙들고 있었으니 그 미안함을 어찌 다 표현하겠는가.
> 수없이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야 비로써 동족의 피를 절감했다.
>
> 관리실 경비원이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안했다. 발걸음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 손자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에어컨을 조정해 주고 설거지를 했다. 집을 보려 나가느라 미처 설거지도 못했었다. 그 새 시계는 새벽 4시다.
> 머리가 아프고 삭신은 쑤셨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아내가 ‘잠은 들었는지 통증은 없는지.’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 손녀가 거실로 뒤쳐 나왔다. 꿈을 꿨다고 했다. 할머니가 다치고 할아버지가 집에 오는 모습인데 꿈도 같고 현실 같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네.’라고 했다. 어린 것이 얼마나 걱정하고 신경을 썼기에 저럴까?
>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 주었다. 울상을 지었다. 어깨를 다독거리며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일렀다.
> 손자는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더 이상 못 참겠다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평소 할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기에 그러고도 남을 아이었다. 잠자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옆에 누었다. 촌각이라도 눈을 붙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차라리 빨리 먼동이 텄으면 좋겠다.
>
> 언제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 5시 50분께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다. 손녀가 늦게 잠들어 실수할지 모르니까 등교시간 맞춰 전화를 해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어젯밤 일을 이야기 해 주었다.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된다고 말했다. 정형외과 친구들과 상의해 보고 들어오겠다며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들의 입싱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밤새 수술 여하를 두고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손자들은 여느 때와 같이 5시 5l분에 일어났다. 손자는 할머니는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학교에서 잘 챙겨먹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했다. 아침밥을 거르지 않았던 손녀도 오늘 아침밥은 사양했다. 할머니 교통사고로 받은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 손자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우리 콘도 앞 도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중앙분리대를 마구 건너다니는데 이골이 나있다.
> 손녀에게 집 열쇠를 주었다. 내가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집에 올 수 있을지 몰라서다. 10분 정도 먼저 오는 손자가 버스정유소에서 기다렸다가 누나랑 함께 집에 들어가기로 약속했다.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자들과 버스정유소에 나갔다. 버스에 모두 오르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
> 신경은 온통 아내가 있는 병원에 쏠려있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통증 때문에 잠이나 좀 잤는지? 생각할수록 뒷골이 땅겼다.
> 가디언이 우리 집 앞에 오기로 약속한 시간은 9시였다. 보호자나 방문객이 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각은 오전 9시부터다. 그 시간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지니까 속이 탔다.
>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밥을 챙겨 먹기로 했다. 밥은 소태맛이다. 서 너 숟갈 뜨다가 치었다. 물을 끓이고 아이들 점심 반찬으로 김과 소시지를 꾸었다.
> 복잡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청소기를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날려버리려고 애를 썼다.
> 그 때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의사들이 하나같이 수술을 하지 말고 귀국하도록 하라고 한다면서 비행기 표를 샀다고 했다. 내 생각과 같았다. 아들에게 싱가포르에 들어 올 때 교통사고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청구 서류가 무엇인지 모두 알아오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바로 나를 두고 나온 것 같다.
> 10분전부터 약속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가디언은 제 시각에 왔다. 수술문제에 대해 아들이 전해온 말을 해 주었다. 그 때 아들이 가디언에게 전화했다. 수술 보류 이야기다. 통역을 가디언이 하고 있어 그에게 모든 것을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 병원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큰 규모였다. 벌써 휠체어를 타고 일광욕을 하고 있는 환자도 띄엄띄엄 보였다.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 6병동 6층으로 올라갔다. 조그마한 휴게실을 거쳐 병실에 들어서자 가장 안쪽 창문 옆에 자리 잡은 아내의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도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많이 진정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아내의 첫 물음이 아이들의 등교와 밥걱정이다.
> 어제 밤에 왔던 여의사와 수술담당의사가 왔다. 40대의 영리하고 자상한 인상이다. 증세를 상세히 물으며 여러 곳을 만져 보았다. 의사의 수술 말이 나오자마자 가디언이 ‘환자 아들이 오늘 밤에 오니까 그 때 상의하자.’고 했다.
> 의사는 내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오겠다면서 나갔다.
>
>                                                 <21회에서 계속>
>
>드리는 말씀 : 교통사고 첫 이야기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은 무척 냉랭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담을 드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 저는 사실 이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 교통사고편이 끝나면 순수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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