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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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23)
  • 새콤달콤 (smells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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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5-3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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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시는 글 정말 잘 읽고 있어요
따뜻해집니다.
싱가폴이 궁금한 사람들, 지겨운 사람들,
오기전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에, 돌아가서도  
다들 서생님의 글을 통해 따뜻함을 느낄거에요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기다릴께요!


>-이제 먹구름은 걷히는가.-
>
> 지긋지긋한 10월은 갔다.
> 11월 1일은 비가 오다가 활짝 개었다.
> 오늘의 날씨처럼 우리에게 드리웠던 먹구름도 걷히는가?
> 아내의 귀국과 쾌차의 희망이 엿보이는 11월이다.
>
>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까 아침 7시다. 모처럼 늦잠을 잔 것이다.
> 전화까지 할 수 있는 아내가 고마웠다. 그만큼 나아지고 있다는 청신호다.
> 전기매트와 한방파스를 찾아오라는 얘기다. 부랴부랴 챙겨서 나섰다.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택시를 탔다.
> 아내는 어젯밤 천둥번개가 치고 허리가 아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 평소에도 날씨가 궂은 날이면 허리 통증을 호소하던 터인데다 수술까지 받았으니까 허리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기저귀를 갈고 등과 허리에 파스를 붙였다. 그리고 전기매트를 허리 밑에 깔아주었다.  
> 8시 20분께 아침식사가 들어왔다. 우유에 시리얼을 타 먹었다. 20여분 뒤 아이들이 왔다.
> 아내는 손자들을 보자마자 얼굴이 해맑아졌다. 원래 참을성이 많고 낙관적인 성품이라 금방 평상심을 찾은 것 같다.
>
> 10시께 수술담당의사가 왔다. 수술한 쪽의 다리를 움직여 보라고 했다. 조금 달싹거렸다. 가슴은 답답하지 않는지, 기침은 나오지 않는지 상세히 물었다. 모두 괜찮다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는 언제쯤 탈 수 있겠는지 물었다. 휠체어만 탈 수 있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가장 듣고 싶은 대답을 들었다.
> 수술을 잘 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도리어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다.  
> 12시 40분께 나온 점심은 수프와 죽과 닭고기요리다. 처음 보는 닭고기요리였다. 아내는 반쯤 먹다가 말았다. 병원 밥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본 아들이 집에 가서 김밥을 말아오겠다며 손녀와 나갔다. 아들도 나를 닮아 밥도 잘 해먹고 원만한 반찬도 제법 잘하는 편이다.
> 3시 50분께 같은 동에 사는 13층 소연이 엄마와 3층 효서 엄마, 15동 선우 엄마가 왔다.
> 며칠 보이지 않아 손녀에게 물었다고 했다. 이렇게 큰일을 당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30여 분간 사고경위에서부터 수술까지의 이야기와 위로의 말이 오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13층 아주머니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은 한순간 숙연해 졌다.  모두 눈물이 글썽거렸다.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
> 아들은 손수 말아 온 김밥을 엄마에게 먹여주었다. 아내는 서 너 개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아들의 손맛이 그렇게도 좋았던 것 같다.
> 바깥에 나가면 오래 견뎌내지 못하는 손자 때문에 나는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 7시 반께 병원에 있던 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연이네 부부와 효서 엄마가 저녁밥을 가져왔는데 병원에서는 바깥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에게 들킨 모양이다.  
> 30여분 뒤 셋이서 우리 집에 왔다. 두 아주머니 손에는 쇼핑백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 순간 나는 너무 미안스럽고 감격해서 할 말을 잊었다. 냉장고를 찾기에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자반과 김치는 냉장고에 넣고 도토리묵과 국물은 싱크대에 두고 나갔다. 고마운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 오늘은 병원에 가지 않고 그대로 집에 주저앉았다. 마음이 많이 느슨해졌다. 아들이 있어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래서 어려울수록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하겠다.
> 9시 30분에 아들과 손녀가 왔다. 손녀는 할머니가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아프지 않았다고 했다. 휠체어도 탈 수 있겠다고 했다. 내가 늘 휠체어 노래를 불렸더니 손녀도 여간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이다.
>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한결 기분도 좋고 아픈 곳도 없다고 했다. 어지간하면 참는 성격이니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많이 나아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
> 이번에는 21동 아주머니 둘이 왔다. 미역국과 양념돼지고기와 여러 가지 반찬을 가져왔다. 이렇게 신세를 져서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평소에 할머니가 덕성스러워서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 나는 사실 숨기려고 했던 일인데 알려지게 되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웃사촌 이상의 큰 의미가 있었다. 타국 땅이기 때문이다.
> 아내와 각방을 쓰는 처지기는 하지만 역시 아내가 없는 집은 허전하고 쓸쓸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일기를 쓰고 밖을 내다봤다. 사고 지점이 바로 밑이다. 머리털이 삐죽 솟으며 소름이 끼친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행여 잠이 들었으면 방해가 될까봐 참아야 했다. 아들과 손자들은 한밤중이다. 뒤척거리다가 지샌 밤이다. 콧물이 주르르 흘렸다. 감기기가 있었다.
> 아침 일찍 아들이 만들어 준 김치볶음과 간밤에 이웃에서 가져온 미역국을 챙겨 나갔다.
>
> 7시에 정유소에 나갔다. 11월 2일 일요일어서 그런지 버스손님이 적었다.
> 병원 문도 빨리 열어줘서 아내 곁에 금방 다가섰다.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무척 평화로운 얼굴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 간호사가 와서야 잠에서 깨었다. 빙그레 웃었다. 미안함과 쑥스러움이 담긴 미소였다.  
> 체온과 혈압이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혈압 약은 좀 더 부드러운 것 같다고 했다.
> 어젯밤 이웃 아주머니들이 다녀간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눈치껏 김치볶음밥과 미역국을 내어 놓았다. 간호사들 몰래 참 맛있게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이다.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밥을 먹었다고 했다.
> 간호사 두 명이 와서 욕실로 데려갔다. 샤워를 시켜 주었다. 모처럼 머리도 감고 몸도 씻어 너무 개운하다고 했다. 표정도 한결 밝았다.
> 아내의 MP3도 켜주었다. 노래 몇 곡을 들었다. 아내의 생일은 음력 11월 2일이다. 양력이지만 생일 같은 느낌이다. 이제 다 나은 기분이다. 그야말로 참 좋은 아침을 맞았다.
>
> 아이들이 10시께 병원에 도착했다. 콧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머리도 아팠다. 아내가 빨리 집에 가서 약 먹고 쉬라고 했다. 아들도 내가 있으니까 안심하고 좀 쉬라고 권했다. 나 역시 버티기가 힘들었다.
> 집에 오면 그냥 자리에 누어야지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세탁이 다 된 세탁물을 널어놓고 물도 끓였다. 뒤죽박죽이 된 집안 정리를 하고 청소하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오늘 낮에는 기를 쓰고 잠을 청했다. 약에 취해서인지 1시간쯤 깊은 잠을 잔 것 같았다. 우선 콧물이 멈춰서 살 것 같다.  
> 양념 돼지고기를 구어서 갔더니 맛있게 먹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빨리 나아서 보답하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해야지.’라는 대답에는 힘이 배어났다.
>
> 가디언이 왔다.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신호등과 상관없이 무조건 가해 운전자의 과실이라고 했다. 100% 보상을 받는 다는 이야기다. 퇴원 전에 경찰 조사를 받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받은 치료비까지 가해운전자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청구하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약간의 위자료도 나온다고 했다.
> 우리나라 같으면 치료비는 피해자가 한 푼도 내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싱가포르는 그렇지 않다.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도 났다.
>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것은 우리는 외국인이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행여 우리가 신호등을 위반했다고 우기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횡단보도에서의 사고는 무조건 운전자 과실이라니 마음이 놓였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
> 닥터 박이 또 들렸다. 너무 고맙다. 어제 문병 왔던 아주머니가 ‘장가가지 안했으면 자기 집 예쁜 딸과 맺어주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장가를 들어 원통하다.’고 하였다는 말을 했더니 너틀 웃음이 입원실에 울러 퍼졌다. 이렇게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그 새 정들었다.
>
> 아내의 화장실 출입은 내가 도와서 할 수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으로 앉기가 일차 관문인데 어렵잖게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단계는 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의자에 올라앉는 것인데 이 또한 잘 해 냈다. 아내는 화장실을 나서면서 입구 쪽에 있는 세면대의 거울도 보았다. 자기 얼굴에 관심을 가질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 그런데 저녁밥은 먹지 않았다. 수술자리가 좀 불편하다고 하여 걱정거리가 생겼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곁에서 자겠다고 했더니 규정을 어기는 것도 싫고 옆에 있으면 더욱 잠자기가 어렵다며 한사코 집에 가라고 했다.
> 10시께 병원을 나서야 하는데 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불편한 환자를 두고 떠난다는 게 여간 힘들고 예사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
> 아이들은 모두 잠자고 있었다. 시장기가 심했다. 주방에서 선채로 밥 한술을 먹었다.  
>
>  11월 3일 월요일이다.
> 아들은 북어국과 양념돼지고기 구이와 김치를 챙겨서 병원에 갔다. 나는 집안 청소를 했다. 마음먹고 깨끗이 했다. 곧 귀국하게 될 아내의 옷장을 정리했다. 13일로 예약된 항공권을 앞당기기로 하고 항공 예약업체에 전화했다. 8일자까지 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 아들에게 알려주고 조치하도록 했다.
> 병원에 확인 결과 8일 귀국이 가능하다는 확답을 들었다. 아들은 8일자 항공권 넷 장을 비즈니스 석으로 구매했다. 항공회사에 휠체어도 준비하도록 미리 통보했다. 한국의 형에게 전화하여 16인승 승합차를 9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 대기하도록 연락했다. 손녀와 손자 학교에도 방학 귀국을 닷새 앞당긴다고 통보했다. 나름대로 만전을 기한 셈이다.
> 11시 반께 아들과 임무교대를 했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가져다준 도토리묵을 싸들고 갔다. 아내는 맛있게 몇 개 들었다. 이웃의 배려는 우리 식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
> 간호사들은 아내를 씻기고 수술부위를 드레싱 했다. 수술 자국을 처음 보았다.
> 대퇴부에서 무릎 쪽으로 무려 20센티 정도 절개됐다. 손톱만한 흉터 하나 없었던 아내다.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본인은 얼마나 속상하고 기가 막힐까? 나는 이럴 때면 곧장 운명을 입에 담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 젊은 시절 내 사전엔 운명, 팔자 따위는 없었다. 예순을 지나면서부터 ‘운명’이란 단어를 빌려 쓰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 대사관에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면서 콘도 해약 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받아주는데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곧 회신이 왔다. 에이전트가 주인과 상의해서 그 결과를 내일까지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 오갈 때마다 마주쳐야하는 사고 장소가 너무 보기 싫었다. 애초부터 우리와 인연이 없었던 집으로 느껴져 단 하루라도 빨리 떠나가고 싶었다.
> 큰 아들내외와 막내아들로부터 전화가 불이 나게 왔다. 차 때문에 사고 소식을 알리면서 들통이 났다. 걱정될까봐 알리지 안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짧은 생각이었다. 얼마나 큰일인데 왜 감추었냐는 것이다.
>
> 다음 날 해는 떴다. 어김없는 자연의 현상이 경이롭다.
> 대사관에서 전화 왔다. 집을 세놓아 나가도록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는 것이다. 우리 욕심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던가? 그것도 다행이다 싶었다.
> 병원측도 8일 퇴원에 따른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X-레이를 찍었다. 보증금 6000불은 이미 날아갔고 2800불을 더 내라고 했다. 순수 입원료와 일반 치료비다. 수술비와 특수진료비는 별도로 정산해야 된다고 했다. 나흘 뒤에 얼마가 더 나올지 모르겠다.
>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왔다. 사고 당시 함께 있었던 남편과 통역이 함께 Tampines 경찰서로 나와 달라는 것이다. 내일 가기로 했다. 그리고 모레는 조사 전담 경찰관이 병원에 와서 본인의 진술을 듣는다고 했다.
> 간호사들은 손녀에게서 배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다닌다. 한국말을 배운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정도 들었다는 이야기다.
>
>                                                        <24회에서 계속>
>
> 드리는 말씀 :  손자와 나는 일주일 전부터 귀국하는 날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 오늘 아침 손자는 등교하면서 ‘꿈인가, 생시인가?’라며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그동안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역시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 여름방학이 끝나는 6월27일 돌아올 예정입니다. 방학기간 동안은 1주일에 한편 정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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