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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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43)
  • fighting (mi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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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10-0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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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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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에 살림을 차리면서 가계부를 썼다. 한 달에 어떤 용도로 얼마쯤 쓰는지 안다는 것은 살림살이의 기본이다. 아울러 자식이 보내준 돈이기에 그 씀씀이를 알려줘야 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매사가 투명해야 속이 시원한 나의 성격 때문이다.
> 가계부의 장점은 많다. 매달 얼마를 무엇에 어떻게 썼는지 알게 되면 살림살이를 효과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줄일 수 있는 부분과 늘여도 괜찮을 지출항목을 읽을 수 있어 다음 달의 예산을 세우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 산수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생을 계량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안다는 것은 현재를 자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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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를 살이라면 가계부는 뼈와 같다고나 할까. 사람이 사는 원동력은 돈이라는 에너지가 필수다. 없어서도 안 되지만 과욕은 더 큰 문제의 화근일수도 있다. 적당하게 산다는 것이 평범하지만 그 또한 조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계부를 쓴다. 최소의 돈으로 최대의 부화를 창출해야 한다. 욕심내지 않고 자기 그릇에 알맞게 살기 위한 지혜라면 지혜다.
>사실 내가 가계부를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계부는 여자들의 전용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 내가 가계부를 쓰게 된 것 또한 아내의 일을 도와준다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가계부 쓰기가 일상이 되었다. 쓰다보면 재미도 있다. 절약의 묘미를 맛볼 수 있어 그렇다. 가계부를 쓰기 위해서는 지출 항목이 또렷해야 한다. 영수증 받기는 물론이고 단 돈 5센트라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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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르다 보면 돈의 소중함을 더더욱 실감하게 되고 송금해 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도 절감하게 된다. 필경 처자식을 위해 돈벌이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남편이나 가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여느 기러기들과는 다르다. 자식이 제들의 자식 공부를 위해 부모를 부려먹는 경우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꼭이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내 손자의 뒷바라지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 아무튼 가계부 쓰는 일은 즐겁다. 내 자신이 정갈스럽게 보인다. 또 상대에게 믿음을 준다.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할 것 없이 상대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다. 믿음은 곧 사랑이고 정진이다.
> 뭐니 뭐니 해도 가계부는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오른 물가가 있다면 내린 물가는 없는지? 환율의 심각성이 무엇인지, 쉽게 알고 대처할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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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부의 핵심은 얼마의 예산으로 살림살이를 꾸릴 것이냐는 것이다. 한 두 달의 가계 내역을 보면 1년 예산을 짤 수 있다. 영수증 챙기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쌀 고기 채소 과일 같은 주요 생필품 가격은  별도로 체크한다.
> 특히 기러기들을 곤욕스럽게 만들었던 환율에 대한 대처는 아주 중요하다. 우리 손자들이 싱가포르에 올 때인 2006년 하반기의 환율은 600원이었다. 물가도 우리나라 70% 수준이어서 살만 했다. 유학비가 싸다는 이유가 싱가포르를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을 정도다. 알게 모르게 오르기 시작하던 환율은 2008년 들어서자 650대에 진입했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설이 나돌던 3월 1000원이라는 고점을 찍었다. 그 때 충격은 컸다. 4월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는 하였지만 1년 전을 회복하기는 글렸다는 전망이다.
> USD는 1100원대로 내려와도 SGD는 싱가포르의 고환율 기조를 고수하려는 경제정책상 800원대 이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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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10달러를 들고 시장에 나가도 별로 살 것이 없다. 고환율에다가 물가 상승 때문이다.  장바구니에서 실감한다.
> 물론 나쁜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 물가는 올랐지만 주택임차료는 많이 내렸다. 내리기는 했지만 원래 비싼 것에 비해 내렸다는 것이고 이미 2년 이상 계약된 상황이라면 덕 볼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 큰 폭은 아니지만 전기, 수도료 교통비 학교 수업료 등 공공요금도 덩달아 올라 가계부담은 만만치 않다.
> 이 같은 이유로 조기 유학을 접은 기러기들도 엄청 많았던 것도 지난 연말에서 금년 초순까지의 현상이다. 비공식 수치이기는 해도 약 5,000명이었던 유학인구 가운데 1,500명이 싱가포르를 떠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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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콘도에서 HDB로 옮겼다. 임대료 3,300달러에서 1,800달러짜리로 옮겼으니까 매월 1,500달러가 절감된 셈이다. 지금의 환율로 쳐도 월 280만원에서 155만원으로 무려 125만원을 아낄 수 있다. 이전의 콘도 집세로 지금 한 달 살림을 할 수 있어 후회 없다.
> 그렇지만 사람의 끝없는 욕심이 불만으로 남는다. 내가 HDB를 얻을 때만해도 콘도 임대료는 내려가고 HDB 임대료는 올라가던 때여서 이 또한 비싸게 얻은 것이다. 지금이면 1,500달러 정도라니까 배가 아프다. 콘도 역시 중간치 정도면 방 두 개짜리가 2,000달러 선이라고 하니까 살만한 임대료다.  
> HDB를 선택할 때도 아들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은 500달러쯤 더 주더라도 콘도를 얻으라고 하였지만 내 고집대로 아파트를 얻은 것이다. 아들 생각은 아버지와 아들 딸을 열악한 환경에 내몰기 싫었을 것이고 나는 실리 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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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싱가포르에 우리나라 돈을 퍼주기가 싫었던 것도 절약의 이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황으로 힘들어 하는가? 조기유학을 한답시고 외화를 쓰고 있는 자신이 미안스럽고 무안했다. 외환보유고가 위험수위라던 올해 초순까지 마음 편치 못했다. 나라 사정이 어려울 때일수록 내 한 사람이라도 근검절약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세계경제 10위권에 진입하게 된 밑거름인 것이다.
> 적어도 우리 세대는 이렇게 살았고 그 정신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래야 산다.
> 가계부를 쓰고 따져보면 줄일 곳이 더러 눈에 뜨인다. 나 같은 경우는 외식은 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시내에 나가도 햄버그면 충분하다. 물론 현지음식도 싸고 맛있다고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기는 하다. 쇼핑도 지난해 중순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옷가지는 단 돈 5달러짜리도 수두룩하다.
> 전기 수도는 마음만 먹고 절약하려고만 하면 적어도 10~20%는 줄일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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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부는 쓰는 사람의 마음을 절약의 모드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 아끼다보면 더 아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정신은 자녀들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아주 좋은 전염병이다. 우리 손자도 용돈을 아껴서 저금통에 넣는 재미를 붙였다. 차곡차곡 불어나는 돈 맛이 괜찮은 모양이다. 자기 말에 따르면 ‘돈 모우는 맛이 짭짤하다’고 한다. 우스갯말이라고 하기에는 의미심장하다. 아마 귀국하여 적금이라도 들면 진짜 저축의 맛에 흠뻑 빠질 것 같다. 돈 불어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니까.
>손자에게 용돈 치부책을 만들어 쓰라고 권해도 그것은 하지 않는다. 티끌만큼도 귀찮은 것은 기피하고 보자는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 안타깝다.
> 훗날 아들딸에게 생생히 기록된 엄마의 가계부가 전달되기를 바란다. 대물림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 그 속에 부모의 땀과 눈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삶의 귀감이 된다. 야무지게 살아가는 방법이 담겨 있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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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날 말에 고생은 젊어서 한다고 했다.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실패의 쓰라린  맛을 보았을 때 성공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역설적인 비유다. 눈물 젖은 빵을 먹지 못한 사람은 행복을 말 할 수 없다는 괴테의 격언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 그렇지만 누군들 자녀들이 실패하고 낙심하기를 바라겠는가? 그저 순탄한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은 부모들의 마음이다.
> 자식을 향한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도 가계부와 함께 일기 쓰기도 권유하고 싶다.
> 땀땀이 기록된 아빠 엄마의 발자취가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줄의 글로 나타났을 때 훨씬 감동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 자주 말하지만 내가 이곳에 글을 올릴 수 있는 힘도 일기라는 기록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들 거의 대부분은 가계부를 쓰고 있겠지만 일기는 얼마나 쓰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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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그렇지 날마다 가계부와 일기를 함께 쓴다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주부들의 일가는 흔적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챙겨 먹여 등교 시키고 청소하고 세탁하기만 해도 한 나절이 모자란다. 한 숨 돌리기가 바쁘게 점심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음식에 까다로운 자녀들이라면 엄마의 힘은 더 들 게 빤하다. 하루 종일 개미 쳇바퀴를 하다보면 저녁 설거지가 끝나기 무섭게 주저앉게 마련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과가 끝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내일 등교도 미리 챙기고 복습도 시켜야 한다.
> 여기에 가계부나 일기장을 편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정신적 중압감이 피로를 과중시키기에 그렇다.  
> 자신의 공부까지 겹치면 힘들기는 배가된다.
>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꼭 써야 하는 것이 가계부다. 계획 가계를 꾸리기 위해서다. 알뜰한 삶의 기본이자 성공하는 삶의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쓴다.
> 풍요를 원한다면 가계부를 쓰자.
>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일기를 쓰자.  
> 이것이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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