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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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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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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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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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愛憎)의 싱가포르

글피 아내가 입원한다. 다리골절 교통사고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2008년 10월이다. 창이종합병원에서 수술 받은 지 만 2년 반이 지난지만 사고의 후유증은 컸다. 불편스런 보행 탓에 바깥출입은 사실상 접었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는 다리의 피로는 물론 남의 눈이 두렵단다. 장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내리는 날이면 전신의 통증으로 괴롭다. 이런 것들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다리교정술이라고 했다. 그 수술을 받기 위해 경북대학병원에 입원한다.
입원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만감이 교차한다. 그 때 사고현장이 악몽으로 스친다. “집 보려 나가지 않았더라면 사고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라는 생각이 또 다시 가슴을 친다. 사실 그랬다. 그 시끄러운 콘도를 얻지 않았으면 임대계약기간을 파기하면서까지 집을 얻으려 나설 이유가 없었다. 여러 가지 여건을 꼼꼼히 따지지 못했던 불찰이 새삼 회한으로 다가온다. 싱가포르 2년 생활에서 가장 싫은 기억이다.

잃은 것도 있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콘도 해약을 하기위해 ‘주 싱가포르 대사관’ 양경희 님의 도움도 받았고, 교통사고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최원형 변호사와 2년여에 걸친 인연도 맺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두 분에게 많이도 애를 먹였다. 내 잘 못으로 벌어진 콘도 소음 문제를 두고 양경희 님을 졸라댔고 싱가포르의 교통사고 처리과정을 두고 최원형 변호사에게 무리한 부탁도 꽤나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나의 투정을 다 받아 주었다. 그래서 모두 해결되었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한국촌 생활기>는 나의 여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귀국했을 때 기러기 노인이 되었고 그 아픔과 애환을 ‘한국촌’에 토해냈다.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글쓰기를 재개하게 했고 작가의 길잡이가 되었다. 살맛나는 노년을 만드는 큰 선물을 준 셈이다. ‘한국촌’ 운영자와 기러기 엄마들과 교민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제 싱가포르 조기 유학을 하였던 손녀와 손자로부터 즐거운 전화를 받았다. 손녀는 중학교 전교 1등을 하였고 손자는 1학년 2등을 하였다면서 자랑했다. 그들을 싱가포르에서 뒷바라지 해준 보람을 느꼈다. 억척스럽게 공부하게 만든 것은 싱가포르에서의 힘든 교육의 덕분이었다. 참 잘 선택한 유학으로 확신하기에 싱가포르는 좋은 인상으로 남는다.
백화점의 식품매장을 돌아볼 때마다 열대과일이 눈길을 끈다. 망고, 파파야, 용과, 스리까야 등인데 가격이 만만찮다. 색깔은 예쁘지만 우리 내외가 즐겨먹었던 망고스틱은 볼 수 없다. 그 맛이 생각만 해도 혀끝에 맴돌며 군침을 삼키게 한다.
부기스(Bugis)역 앞 이루마 4층에 자리한 한국 레스토랑 ‘창’도 그립다. ‘기러기 할아비의 이야기’의 팬 모임이 있었던 곳이다. 모임을 주선했던 피닉스를 비롯해 참석해 주었던 로사리아, 맛깔, 태린, 시작님이 떠오르고 보고 싶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싱가포르를 떠나올 때 창이공항까지 배웅 나왔던 팬들과의 눈물의 작별은 지금도 내 맘을 울린다.

싱가포르 한인회는 영원한 추억의 보고다. 그 곳에는 따뜻한 우리민족의 혼과 온기가 서려있다. ‘2009년도 한인가족 한마당’에서 디카촬영 대상을 받았고 ‘2010년 한인회 체육대회’에서 노장층 단축 마라톤에서 최고령으로서 3위를 했다. 그 추억의 사진과 트로피는 웃음을 자아낸다. 나에게 있어 한인회의 중심은 봉세종 한인회장이다. 봉 회장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관심과 배려는 늘 고마움의 대명사다. 그 분으로 하여금 싱가포르 유명 호텔을 읽을 수 있었고 한인사회의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둘이서 나누던 중국 전통 찻집의 차향은 늘 가슴속 깊게 흐른다. SK건설 싱가포르 지하철공사 공무부장 윤정욱 님과의 인연도 깊다. 그의 ‘몸살림운동’이 한인회 체육진흥책으로 채택되는데 보탬이 되었던 나의 역할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한인회가 마련한 경로위로연도 잊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 모임을 통해 알게 된 교민들의 애환에서 내 민족 내 조국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웠다.  

아내와 자주 거닐던 싱가포르리버의 추억도 삼삼하다. 일식집에서 뒤집어 쓴 바가지도 웃음꺼리로 남는다. 오차드의 백화점들과 시티홀, 선택도 한 번쯤 더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나름의 추억이 있어서다. Raffles Place의 금융가와 도심 속의 절 구경도 괜찮았다. 차이나타운과 인디아 무슬림타운을 비롯한 과학박물관, 전쟁기념관, 동물원과 새공원도 가볼만한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은 센토가다. 여러 번 가보기도 했거니와 헤매던 웃음거리도 있어서다. 손자 녀석이 찾아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두 번째라는 Henderson waves 구경도 손자와의 추억거리다. 줄곧 머물었던 베독은 싱가포르의 고향이다.
매일같이 팬티 하나만 입고 마을을 활보하던 이웃 중년도, 자전거로 손자를 등교시키던 할머니도 빠질 수 없는 추억거리다.

1000원대를 돌파한 환율에 애태우며 벌벌 떨었던 그 때의 모습도 되돌아보면 차마 웃을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출판물을 탈고를 했다. 셋 달 동안 원고를 쓰느라 낑낑거렸다. 출판사에 송고를 하고나니 그간에 못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 가운데서도 싱가포르의 추억이 당연 앞선다. 아내에게 있어서는 평생 동안 지울 수 없는 악몽의 상처를 남겼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노년을 이끌어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이래서 세상사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던가?  
창밖에는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면서 내가 만든 남강쉼터 담장에 장미꽃이 유난히도 붉게 다가온다. 혼자 보고 즐기기에는 너무도 아까워서 얼른 한 컷 찍었다. 5월의 꽃이라는 장미의 흐드러진 그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싱가포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장미꽃보다 더 붉은 열정으로 억세게 살면서 알알이 영글고 살찐 결실 맺기를 기대한다.

                                                                             <29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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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

안녕하세요? 오월의 장미라더니 정말 눈부시게 예쁘네요. 손주들도 대견하고요. 자랑하실만 합니다.저도 이곳생활 6년째 접어들었는데 handerson wave 란곳을 저번 주에 다녀왔어요. 멋지더군요. 좁은 싱가폴도 찾아보면 가볼때가 곳곳에 많더라구요. 어쨌거나 할머님 수술 정말 잘 되시길 빌겠습니다. 꼭 좋은결과가 있어서 두분이서 다시한번 싱가폴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언제나 좋은글 고국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sing님의 댓글

Jsing (paik1220)

그럼 서생님의 글을 책으로 볼 수 있나요? 다음달에 한국가는데.  6개월 정도 있을 예정이라서요. 싱가폴이 그리울까요? 싱가폴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 그립겠죠. 3년 반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반년정도 쉬어 가렵니다. 두고 가는 애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자립도 교육이라 한번 믿어 보려고 합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투션즈님. Jsing님, 찾아주셨군요. 고맙습니다. 투션즈님께서는 6년이나 되셨다고요? 오래 계실수록 정도 들었겠지만 고국도 그만큼 그립겠지요. 그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집사람 쾌유를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Jsing님께서는 일시 귀국하신다고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주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연락 한 번 주세요.  '어느 할아버지의 애틋한 가족사랑 이야기'는 증정하겠습니다. 두 번째 책 (길을 묻는 당신에게)은 6월15일쯤 발매 예정입니다. 각 서점과 인터넷서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

안녕하셨어요? 서생님 기억속의 팬입니다. 그동안 뭐가 바쁘다고 이곳을 잘 들어오지 못했는데..... 밤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얘기.... 쪽지드리고, 전화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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