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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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좀 더 해봐야 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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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가 (jph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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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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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에 열받아서 회사에서 한판을 벌렸다.  

한국식으로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서 폭발하듯이 한판을 벌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열을 식히며  
모든 증거를 모으고
계획을 착착 새우며  
시간과 장소  불러서 따져야 할 사람들의 일정까지 다 염두에 두고
벼르다가 벌리는 판이라서

준비도 완벽하게.
빠져나갈 틈을 다 막고,    
목소리 톤도 절대 감정의 기복이 없이 조근조근 그렇게

구석으로 쥐 몰아 넣듯이 물샐틈 없이 몰아서  “꽉”  물고 흔들었다.

워낙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인지 물린 쪽은  빠져나가지를 못하고  
내가 흔드는대로  변명도 제대로 못하고  일방적으로 몰려서
결국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 라고 시인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외국에서의  10여년 직장생활이 갑자기 아득해져 왔다.

얼마나 듣고 싶던 소리던가?
미꾸라지 빠져 나가듯
눈에 뻔히 보이는 자신의  잘못인대도  천가지 만가지 이유를 들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던지  아니면  사람 오만간장을 다 뒤집어 놓고는 결정적인 순간에  조용해 지면서 문제를 방기해 버리는  그 다양한 수법들
정공법 밖에 모르는 강원도 촌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중국적, 싱가폴적,  국제적 기법앞에서   얼마나 많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아파했던가.

언어때문에
인종차별때문에
파벌싸움에 대한  문화파악의 미숙함 때문에
그동안 당했던 순간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갔다.

여태까지의 상황을  봐서는  “대한민국 만세” 나   “의지의 한국인”   또한 집에 전화해서
“엄마, 나 먹었어.   드디어  미꾸라지 싱가폴 놈에게서 잘못했다는  자백을 받아냈어” 라고 신이 나야 할것 같은데,  왜 이렇게 씁쓸한지.

왜 그럴까?
갈수록 가슴이 시원해야 할텐데  갈수록 물고 흔든 이빨에 뭔가 끼인것 같이 찝찝한  느낌.

사람이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수록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이해할수 있는 존재 이여야 하지 않을까.
말이란 인간과 인간사이를 더  끈끈하게 이어주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시간을 두고 꼭 상대의 약점을 찾고   그 약점을 찌르는 문장을 만들고
그리고  오랜 기간을 같이 일한 사람을 구석에  밀어 붙여서
깡패처럼   언어의 폭력으로  “항복”을 받아내야 했을까.

나는 그렇게  꼭 이겨야만 했을까.
그렇게 이겨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똑부러지게  잘 따져서  잘잘못을 가려서 그래서???

뒤에 오는 것은 게운하지 못한 감정과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 뿐이데.
이 실망감은 상대의 말도 않되는  책략에 걸려서  바보같이 당할때 보다도 더 깊은 것을,

나의 좋은 점이던
상대에 대한 배려,   과묵함,  아량,   인간에 대한 신뢰,   선량함은  처음 내가 싱가폴에 와서 경악하던 싱가폴사람들의  진절머리 나도록  자기중심적,  상대에 대한 몰이해,  사악함 같은  섬사람 특유의 나쁜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흔 이후의 나의 인간성과 얼굴은 내 책임이라는데  나는  얼마나 나를 잘 가꾸어가고 있는가. 얄팍한 승부의식 때문에   삼십여년 잘 가다듬어 놓은 나의 모습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좀 더 해 봐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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