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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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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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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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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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가 그리워질 때-

요즘 들어 부쩍 싱가포르가 그리워진다. 새벽시장이 그립고 등굣길이 선하게 떠오른다. 당장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는가 보다.
그 곳에 살 때는 우리나라 산천초목이 그리웠다. 그 곳에서 살자마자 그랬다. 낯선 땅이 그랬고 다문화 풍속이 그랬다. 아무리 방제를 한다 해도 용케 기어들어오는 바퀴벌레와 개미떼가 징그러웠다. 늘어빠진 인터넷도 싫기는 마찬가지였고 디포짓 떼어먹는 현지인들도 역겨웠다. 그래저래 싫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그리워지는 걸까?
우리나라의 현실을 따져보면 왜 그런지 답이 나온다.
청장년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쩔쩔맨다. 물가도 만만찮아 살기가 어렵다고 불평이다. 여기에다 강력범죄는 날개를 달고 설친다. 성폭력과 살인이 예사롭다. 중학생이 또래 여학생에게 집단나체 린치를 가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교통사고가 꼬리를 문다. 참 살벌하다.
나 같은 노인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버릇없는 젊은이들이다. 학생들은 어른이 옆에 있거나말거나 입에 담지 못할 음담패설을 해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신조어에다 은어까지 쓰고 있으니 아주 이상한 외국에 온 것 같다. 시내버스 노약자석은 노인들을 욕보이는 자리가 된지 오래다. 젊은 아주머니들이 학생들보다 더 천연덕스럽다. 백발노인이 옆에 서 있어도 시치미 뚝 떼고 앉아버틴다. 공중도덕이나 예절이 무너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은 케케묵은 옛 이야기로 묻혀간다.

이뿐인가.
학생들은 입시지옥에서 끙끙거린다. 학교의 공교육으로서는 진학이 어림없다. 그래서 사교육의 천국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는 영어 중국어 국어 수학 과학 학원을 다닌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학원에 달려간다. 올해 여중에 진학한 손녀도 마찬가지다. 중학생이라고 더하다. 1주일에 두 번씩 수학 투션이다. 아이들은 파죽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밤 12시까지 공부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외국어 고등학교 영재반에서 매주 토요일 영어 영재수업까지 받는다. 외고 영재반에 들어가기 위한 입학도 치열했다.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란다. 하기야 100대 1도 넘는 경쟁을 벌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성적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단다. 초.중등생이 이런데 고등학생이야 말할게 어디 있겠는가. 고등학교 2학년인 큰손자는 하루 네댓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한다며 늘 피로가 누적된 얼굴이다. 꼬챙이 같이 말랐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이러니 부모들인들 견뎌내겠는가?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청거린다. 아이 한 녀석 밑에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중소도시 경우에도 1백만 원이 넘는다. 한 마디로 죽을 지경이다. 공부에 붙들린 아이들도, 교육비에 찌든 학부모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교육당국에서 아무리 묘수라고 짜내도 소용이 없다. 얼마 전 교육부는 집에서 EBS 입시교육방송만 충실히 봐도 입시에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EBS 교재에서 70%를 출제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 말을 믿고 TV나 인터넷에만 의지하려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다.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에게는 EBS가 이미 필수코스가 된지 오래인데 말이다. 정부정책이 불신을 받고 어른들의 교육열이 식을 줄 모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을 통해 오늘의 경제 강국으로 발돋음하고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우리가 보기에도 안쓰럽고 답답하다.

그래서 느긋한 싱가포르 사람들이 좋다. 놀고먹는 실업자가 적어 좋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교하는 버릇이 없어 좋다. 학교 등급도 있고 천한 직업도 있지만 우월감을 가지거나 열등의식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 지위를 따지는 사람도 없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그뿐인 국민의식과 사회 분위기가 좋다.  
인종차별도 없다. 종교 갈등이나 편파성 시비도 없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진학하는 교육제도도 괜찮다. 학교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그 나름의 일자리가 있어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이유가 부러움으로 다가오고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인가?
두리안의 구린 냄새도 그리움의 목록에 들어 있다면 이 얼마나 간사한가?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싱가포르... 그래서 구린내조차도 그리운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우리나라 날씨는 좀처럼 햇볕을 쬘 수가 없다.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된다. 계절은 분명 봄인데도 때때로 눈발을 뿜어낸다. 도시 종잡을 수가 없다. 온난화의 변덕 기후가 두렵다.

상하의 나라 싱가포르,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감기 걸릴 리 없어 딱 좋은 나라.  
아내가 즐겨먹던 망고스틱이 그리운 나라.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사방팔방 다녀도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나라.
높고 맑은 하늘이 사람의 마음을 청정하게 만드는 나라.
땀을 줄줄 흘릴 때면 어김없이 뿌려주는 소나기, 하늘의 배려가 고마운 나라.
아이들의 글로벌 안목을 키워준 나라.
우리 교민들이 둥지를 틀고, 기러기 엄마 아빠가 릴레이로 살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이기에 좋다. 그립다.

서울 크기 면적에 인구 500만의 작은 도시국가를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무리지만 배울 게 많은 것은 분명한 나라다. 아무렴 내나라 내 고장만큼 좋을 리 만무지만 다시는 갈 수 없는 머나먼 곳이기에 이토록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13회에서 계속>

드리는 말씀 : 아직도 아내의 교통사고 보상을 받지 못한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토록 그리움이 남는 것은 웬 일일까요? 아마도 여러분들이 있어 그럴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작품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신문이기는 하지만 현존하는 여성신문으로서는 유일한 “경남여성신문” 상임고문으로 칼럼과 사설을 쓰고 있답니다. 열정적인 여사장님이 저가 자주 올렸던 모 사이트의 글을 보고 수소문하여 찾아 왔더군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글의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야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경남여성신문’을 치면 저의 글을 볼 수 있습니다.(배너의 사설, 칼럼에도 있으나 ‘칼럼’에 들어가면 그 동안 올렸던 몇 개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이 보시고 가감 없는 독후감과 아울러 추천 글도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자매지 ‘한국여성저널’도 책 전체를 올릴 예정입니다. 이 같은 여성지를 통해서나마 여러분들의 타국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1회에서도 댓글로서 힘을 보태주신 SJ 님, 웃자 님, 투썬즈 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글을 짧게 쓰겠습니다. 읽으시다 지치는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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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살자님의 댓글

살자 (whalghks)

1년을 살면서 점점 싱가폴이 맘에 드네요....왜지?

화창한 오후님의 댓글

화창한 오후 (you4156)

저도 1년후, 2년후에 남강님 같은 마음이 생길거 같아서 지금의 현실에 열심이려고 합니다. 뭔가 정리가 필요할때, 마음을 가다듬어야할때, 남강님의 글을 보면 위로도 되고, 정리도 되고. 힘도 생깁니다.

긍정의힘님의 댓글

긍정의힘 (iandp)

여기 몇년 살면서 좋은 건 다른 것 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고, 안전하고 공기물등 환경이 좋아서 마음에 드네요. 싱가폴은 아침에 신문을 봐도 별 다른 생각없이 하루를 시작하면서 보지만, 한국은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들을 접하지만 왜 그렇게 정치적다툼 사회적갈등 반목등이 심한지... 왜케 서로들 미워하는 지... 볼때마다 갑갑해집니다. 그래서 사실 잘 보지 않게 됩니다, 보고 나면 머리만 아픈것 같고, 왜들 저렇게 다투면서 불안불안하게 사는 지....

긍정의힘님의 댓글

긍정의힘 (iandp)

그리고 며칠전에도 한국과 참 다르다고 느낀 부분이 최근 집값이 다시 상승을 한다는 그런 기사가 났길래, 점심먹으면서 거래처 로컬직원과 예기를 했는 데, 요즘 집값이 많이 상승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지 않냐고 했더니, 한마디로 NO하면서 중국속담에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있다면서 주변에 부자들이 많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이 더욱 많이 쓸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면, 자기같은 중산층도 더 많이 벌수 있으니 그 사람들 만큼 부자가 되지 못해도 분명한건 지금 보다 더 부유해진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런 마인드면 잘살수 밖에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국분들은 어떻게 생각들 할지...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저도 1년여후면 싱가폴을 떠날꺼 같은데,, 힘겹고 지루한 싱가폴이 그때면 그리워질까요.....

웃자님의 댓글

웃자 (emsabina825)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건강과 함께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봄 되시길 바래요.

탱글탱글님의 댓글

탱글탱글 (raindeer)

사람이란 그런가 봐요. 지금 가진 것과 지금 누리는 것에 만족하기 어려운... 싱가포르에 체류중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이 그립다고, 한국이 훨씬 살맛난다고 하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싱가포르 얼마나 살기 좋으냐고 부럽다고 하고 (물론 살아봤던 사람들은 또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만). 어디나 다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만 모두 누리고 싶어하는 욕심때문인가 봅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이 쉽지 않네요.

언제나힘찬님의 댓글

언제나힘찬 ()

제주변에는 솔직히 한국이 훨씬 살맛난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던데요...^^; 대부분 싱가폴이 안전하고 사회가 안정되어있고 쾌적해서 좋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저 같은 경우 가끔 싱가폴에서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나 가을하늘이 그리워 질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언제나힘찬님의 댓글

언제나힘찬 ()

솔직히 년중 몇번 서울출장가면 언제나 번잡하고 거리는 지저분하고 싱가폴에서 생각나던 종로나 강남역 주변 길거리 음식먹고 나면 속 거북해지면서 후회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싫고, 택시타면 기사분들 나름이지만 불친절에 괜히 긴장되고, 아이들은 왜들 그렇게 거칠고 욕설은 깜짝 깜짝 놀랄정도로 공공장소에서 남발하는 지... 솔직히 출장갔다오면 그다지 생각 안나게 되네요.

JSING님의 댓글

JSING (paik1220)

환경이 중요한가요? 가족이 있어 그리운 나라 대한민국 아닌가요.비자 발급 유효기간이 안지나도 행정처리 미숙으로 신규 발급하라는 나라.어필을 해봐도 소용없어 포기하고 신규발급하며  떠나고 싶네요

투썬즈님의 댓글

투썬즈 (jungsoowoo)

전 아직 돌아가려면 자그마치 6년이 남았는데..  저도 나중엔 이곳이 그리워 질까요? 할머니의 교통사고도 그렇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것 같은데 이곳이 그리우시다니 이해가 처음엔 안가더군요. 전 북한때문에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 생각하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요즘도 해군함 침몰 사건으로 다들 걱정들 많으시죠? 어디에 있건 한국사람이니 어쩔수가 없어요.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그곳이 언제나 그리워요. 막상 그곳에 있으면 답답하고 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인가 봅니다. 어디에 살든 우린 한국사람이니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자구요.

ROSALIA님의 댓글

ROSALIA (mjjung68)

저도 싱가폴이 참 좋습니다. 그치만...... 그래도 너무 그립고,,, 애들 공부 다 시키고 나면 꼭 돌아가 살고 싶은 나라.... 내 나라 대한민국이 제일 좋은거 같아요.

화니님의 댓글

화니 (jxkk)

그렇게 좋으시면 다시 싱가폴로 오셔서 오래오래 사시죠. 갑자기 반감이 많이 생기는 글이네요. 제가 싱가폴 생활에 너무 지쳐서인가 봅니다.  저는 싱가폴에 오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돌아갈 그날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런 그리움이 생길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이 들 구석은 거의 없는 데...  그냥 그냥 연명하고 살고, 매일같이 기쁜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면서...  아뭏든 힘내서 살아야 하겠죠?

호호아줌마님의 댓글

호호아줌마 (bonnoel)

파아란 하늘이 너무 이쁘고 반짝거리는 초록이 너무 아름다운 싱가폴입니다. 우리네 사는 세상사를 등지고서라도 더운 날씨곁으로 보이는 경치는 정말 마음을 푸르르게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더 여유로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싱가폴에 있는데도 싱가폴을 떠나면 너무너무 그리울거 같아서 남강님의 글에 공감이 되네요..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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