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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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사는 이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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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강(서생) (h12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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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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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가에 앉아
  -어머니가 그립다-

‘남강쉼터’ 팔각정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여럿 모여서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워 좋다. 한창 정열을 뿜어내던 담장의 장미꽃도 저버렸다. 그래도 그 자리엔 짙푸른 녹음이 우겨져 황량한 가슴을 그나마 채워준다.
TV에서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이 방송되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세 끼 밥도 먹지 못하는데 ‘웬 고속도로’라니? 박정희 대통령을 욕했던 졸장부의 단견머리가 새삼 부끄럽다. 참새가 봉황의 큰 뜻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내노라 하던 야당 정치인들도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반대에 나섰으니까 참새는 나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코웃음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국가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429억원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쏟아 붓겠다고 했으니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다. 미쳤다는 말이 나올 법 했다. 이른바 국토의 동맥 또는 ‘산업대동맥’이라던 캐치프레이즈가 그저 황당하게만 들렸었다. 그러나 착공 2년 5개월만인 1970년7월7일, 서울 부산을 잇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수출물량이 인천 부산항으로 이어지면서 수출 100만불, 1000만불 그리고 1억불 탑을 세웠을 때, 박정희 그가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독재자로 매도했던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역사적 쾌거였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역사를 다시 쓴 걸출한 지도자의 용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이 날이 내 어머니의 기일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지난 세월에 무심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끈끈하다. 봇짐장사로 5남매를 먹여 살렸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너무 그립다. 제삿날 마다 가슴깊이 사무치는 그리움이지만 올해는 더욱 더하다. 일흔을 겨우 넘기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토록 안타깝게 다가오는 것은 내 나이 일흔을 넘어서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옛날이야기가 많아졌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는 자주 TV채널을 돌린다. 눈이 멈추는 곳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의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다. KBS2의 희망릴레이 “사랑 싣고 세계로”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가 평생을 전상의 불구와 병환에 시달리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이야기에 눈물이 흐른다. 이 나라를 지켜준 그 은혜가 고맙고 한 끼 밥걱정을 해야 하는 그들의 가난이 야속해서다. 그들이 흘린 피로해서 오늘의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렸고 경제 13위를 구가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나라였지만 가난의 고리는 끊지 못했다. 우리의 1960년대에서 그들의 시계바늘은 멈춰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가 도와야 할 차례다. 아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 연예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가짐이다.

어제 부산 여동생과 통영 셋 째 동생 내외가 왔다. 대구 큰 동생도 합세했다. 막내 목사 동생은 번번이 불참이다. 핑계는 몸을 뺄 수 없는 목회 타령이다. 어쨌든 네 형제가 자리를 함께 하였다는 그것이 좋다. 모처럼 집안에 훈기가 돈다. 화제는 당연히 어릴 적 이야기다. 입담이 좋은 큰 동생은 아침마다 땔감을 찾아 인근 산을 헤맸던 국민학생(초등학생)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이면 동생과 나는 지게를 메고 야산에 올랐다. 눈을 부비고 기지개를 캐면서 풀잎의 이슬과 부딪쳐야 했다. 하지만 땔감은 흔치 않다. 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1년생 잡나무와 푸섶이 우리의 표적이다. 낫을 잡는 순간 눈에는 땔감밖에 없다. 두 형제는 열심히 낫질을 했다. 나무 반에 풀 반이다. 불이 나게 산을 내려오면 세수하고 등교하기가 바빴다. 밥이라야 시커먼 보리밥이다. 입안에서 밥 톨이 뱅글뱅글 돈다. 보리쌀은 두 번을 삶아야 찰기가 약간 돌지만 역시 쌀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보리밥이 되는 법이다. 그런데 쌀이 없다. 꽁보리밥이다. 이마져도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 50~60년대의 우리들 살림 살이었다.

아내는 아프리카 봉사로 유명한 탤런트 김혜자씨의 이야기를 했다. 20년 전 10대이던 어린애가 그새 시집가서 아이를 낳다가 숨져간 사연이었다. 그들의 곁에는 병원이 없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죽은 딸의 부모도 울고 김혜자도 울고 시청하던 우리내외도 울었다. 가난한 나라, 그들에 있어 현대화의 의료시설은 천국의 꿈에 불과했다. 감기기만 있어도 동네 병원을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 천국사람들로 비춰질 것이다. 하루에 우리 돈 200~300원을 벌기위해 쓰레기장을 뒤지고 골목을 누비는 가난한 나라의 삶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필리핀 베트남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형제도 쓰레기장을 헤집은 추억이 있다. 도회지에서 촌으로 들어온 폐기물에 낯선 물건이 많아서다. 가장 인기품은 주사기와 약병이었다.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더미에서 찾아낸 주사기는 의사와 간호사 놀이에 안성맞춤이다. 주사 놓는 시늉을 하다가 살갗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의료폐기물이 엄격히 분리 처리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렸다. 그 가난한 세월을 오늘의 풍요로 만든 나라와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국민성과 지도자의 차이다.    

오늘 밤 어머니 제사상에는 하얀 이밥이 오를 것이다. 쇠고기국도 오르고 돔 구이도 오른다. 닭은 통째로, 찹쌀시루떡도, 오색 과일도 소복소복 오를 것이다. 이 번 제사에는 아주 크고 근사한 제사상도 마련했다. 상 두 개를 붙여서 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 때문에 당장 바꾸었다. 무척 좋아 하실 것이다. 어린자식들에게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였다며 평생을 두고 가슴앓이를 하셨던 어머니다. 겨우 배불려 먹고 어머니를 제대로 모실 즈음 어머니는 세상을 떠셨다. 통탄스런 일이다. 아마 나만의 경우도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많은 이들의 회한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지체 없이 갖다 바치는 오늘의 아빠 엄마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 이야기다. 때로는 아이들이 원하지도 않는 과잉 사랑도 한다. 과외공부도, 해외유학도 예외는 아니다. 어버이로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내 아들 며느리가 그렇고 손주들의 호강이 그렇다. 우선은 다행이다. 그러나 왜 그래야만 하는지, 부모도 자식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적이 불분명하고 인식이 모자라면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원탁 위에 고즈넉이 자리한 커피 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오늘따라 더 진한 향기가 코끝에 그윽하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휘어져 오르다 서서히 사라져 가는 김은 과히 예술이다.
철길을 달리는 열차의 소음이 잠깐의 사색을 깨운다. KTX가 빠르게 내달리는가 하면 그새 느림뱅이 무궁화가 꼬리를 문다. 덜거덩거리는 철의 마찰음이 오늘도 지나쳐버릴 어제를 더듬게 한다. 아버지 어머니를 깊이 생각하게 했고 국가와 지도자의 면면을 따져보게 한다. 아울러 나는 내 부모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했으며 역사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충실했던가? 바로보고 옳게 알려는 노력을 하기나 하였던가? 과거는 오늘의 거울이고 오늘은 미래의 가늠자라는 철칙에 마음 써보았던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 칭찬에 인색한 인격,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용심, 오늘에 도취된 역사의 망각, 이념과 이기주의에 매몰된 오류 등등...

열차는 오간다. 손님들은 왕복한다. 살아있다는 신호가 시끄러운 철의 마찰음에서 솟구친다. 오늘도 내일도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오래오래 말이다.
그런데,
“인생에 왕복 티켓은 없다”고 했던가.
세월은 가고 따라서 인생도 묻혀간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이 시간이 간다. 2010년의 반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갔다. 헐어놓은 달력의 절반이 사라져 간 것이다. 이렇게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세월 따라 인생도 하염없이 가고 있다. 나도 너도 그렇게 가고 있다.
내 자식이 지금 나처럼 나를 추모할 것이다. 그 길을 향해서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18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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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다교님의 댓글

다교 (djnashin1)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하던 해...제가 태어났죠. 감회가 새롭습니다. 항상 선생님의 글을 읽고...혼자, 눈물 훔치고는 몰래 돌아서고 말았는데 ...오늘은 댓글로나마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삭막한 사무실이지만...선생님 글에 위안을 받고, 잠시나마 추억을 떠올려볼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아무쪼록 건강 하셔야 합니다.

케빈님의 댓글

케빈 (yeskimc)

비가 그치고 물안개가 오르는 산자락 아래 툇마루에 앉아서 따스한 차 한잔 마신 기분입니다. 오래동안 그랫던것처럼 말입니다. 선생님 글을 읽고 깊은 숙면을 하고 깨어 난 기분입니다. 여전히 건강하시고, 넉넉하시지요! 다음 글에 찾아 뵙겠습니다.

남강(서생)님의 댓글

남강(서생) (h12k13)

다교 님, 반갑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의 중흥을 일구 듯 님도 함께 일취월장하시기를 바랍니다. * 케빈 님, 안녕하시지요. 늘 찾아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아낌없이 주시는데 너무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 언젠가는 꼭 뵙고 싶고요. * 독자 여러분, 모두모두 행복한 주말 되세요.

간띠분곰님의 댓글

간띠분곰 (encarrot)

좋은글 정말정말 감사합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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