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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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스 (charls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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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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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집엘 다녀왔다.

매주 가는 가까운 곳이지만 겨우내 잠깐씩만 다녀와서 오늘은 일좀 하리라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집앞 잔디는 누런 잎 사이로 푸른 잎들이 제법 자랐고,

어머니의 꽃밭에선 벌써 꽃들이 서로 분주하다.



보라색 제비꽃이 군데군데 피어있고,

노오란 수선화도 벌써 예쁘게 피었다.

보라색과 분홍색 글라디오글라스(?)도 피었고,

매발톱과 금낭화는 탐스런 싹들이 소담하게 올라왔다.



정 남향의 집앞에 있기도 하지만, 큰 창문에 반사된 햇빛까지도 놓치지 않아

동네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워 동네의 부러움을 사는 꽃밭이다.


집뒤의 개나리는 노란 꽃이 피려고 끝이 노랗게 말려있고,

또 노란 생강나무만이 정말 노랗게 피었다

매화는 분홍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고,

앵두나무도 며칠안에 꽃을 피우겠다.


쥐똥나무는 가지끝이 푸른빛을 띄고,

목련은 아직이다.

산수유나무는 좀더 있어야 하나보다.

대문안쪽 양옆의 진달래도 꽃몽우리만 통실하네.

양지 바른쪽의 돌단풍은 벌써 꽃이 다소곳이 피었다.

내일이면 활짝 피겠다.



어머니께서 겨울을 이기고 이쁘게 올라온 파를 뽑고,

동생네서 보내온 더덕을 까는동안

나는 올해 첫 고기굽는 행사를 치렀다.

겨우내 서있던 불판 테이블에 “아래로 타는 숯불” 을 피우고,

목살을 구웠다.

굵은 소금도 뿌려가며…  



보통 봄이면 내 손님들로 분주한 어머니집의 돼지고기 구이는 이제 나의 주특기가 되었다.

아직 조금 일러서 상추도 없고, 바람도 조금 있었지만 햇볓은 제법 따끈하여

밖에서 고기를 구울만 하였다.

연기가 눈으로 들어가 눈물이 나려는데 왜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을까.

 

내가 강남 아파트를 팔아 남향의 조그만 이 전원주택을 부모님께 사드린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사시던 집에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나이때문인지 건강이 자꾸 나빠지셨다.


이 집을 사기로 계약했던 1998년 초가을에 아버지는 입원을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 가시는줄 아셨다.

“아들이 사준 집에서 한 이년이라도 사시고 가면 얼마나 좋겠노.” 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회복되어 퇴원을 하셨다.

사시던 집이 아니고 새로 산 이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거짓말 처럼 정말 정확히 2년을 더 사시고 2000년 가을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셨다.



늦게본 아들인 나는 계속 아버지를 놓아드리지 못하고 아버지 몸에 두 군데나 구멍을 뚫었다.

나중에는 기력이 없으시다가도 큰 아들만 보면 아이처럼 환하게 웃어 주셨다.

반복적인 입원과 퇴원 그리고 야간 응급실을 집처럼 드나들며 2년을 보내셨다.



동생과 교대로 병원을 지키다 집에서 자고 교대하러 병원으로 가던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가벼워진 육신을 남겨두시고 80의 생을 마감 하셨다.



남들이 그러듯 후회없이 모셔서 인지, 착한 성품으로 좋은 곳에 가셔서인지 아버지는 그뒤로 내 꿈에 조차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으셨다.


내일모레가  한식이니 어머니 모시고 아버지를 뵈러 가야지 생각한다.



보통은 불판테이블에서 구워가면서 먹지만 오늘은 단촐하여 구운고기를

가지고 집안에서 식사를 하였다.

달큰한 파전에, 파나물, 더덕무침, 아직도 아삭거리는 묶은지에 구운목살…

아침겸 점심을 오후 2시에……  


퇴비 두 포대를 안고, 지고해서 밭으로 나르고,

장미 가지들을 대문위로 올리고, 묶고…

연못에 물고기 사료도 던져주고, 한참을 쳐다본다.

저넘들은 행복한건가 ?



결국 화분에 수선화 두 포기와 매발톱 한송이를 옮겨심어 들고서

일산 집으로 향하는데 계속 아버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도 내가 보고싶어 지셨나, 자꾸생각이 나는게.


장미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따끔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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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케빈님의 댓글

케빈 (yeskimc)

찰스님의 글을 읽고 부스럭 부스럭 많지도 않은 책더미속에서 시집 한 권을 찾아냅니다.  이정록시인같아서 말입니다.  의자  - 이정록 -  병원에 갈 차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온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꽂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라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댁의 연못속에의 물고기는 잘 모르겠지만, 찰스님은 행복하신거 맞습니다. 이 연사 목청 높혀...ㅎㅎ

COOLady님의 댓글

COOLady (coolady)

오랜만에 이 게시판에 들어오니 아름다운 글들이 많네요. 갑자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 싶어집니다.

구름처럼님의 댓글

구름처럼 (charmer)

영락없이 지난 4월 휴가들어갔을때 저희집 앞마당 풍경 그대로 입니다. 앞 부분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행복하세요

concert님의 댓글

concert (concert2580)

첨으로들어와 글을읽었습니다 잊고있다 문득 돌아가신부모님생각나 울었습니다 넘넘뵙고싶어지네요 살아계시면 호강시켜드릴수있었는데 역시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질않으시죠 너무나도 일찍가셔서 생각만하면 가슴이져며오네요 남부러울것없이 살고있어도 채워지지않는게부모님의빈자리인것같네요 살아계실때 잘해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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