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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께 드릴 새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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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사람 (hoy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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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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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쓴 글입니다.

"버려도 전혀 아까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낡고 찌그러진 아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빠가 실직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아빠의 실직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아빠는 그 일로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가끔 주무시다가도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은 마치 활동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실직하신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새로 입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였는지라 아빠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입사하신 지 1개월이 조금 지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출장 근무를 자원하셨고 회사의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그 후 늘 출장만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4일씩이었던 출장이 조금 지나서는 1-2주씩으로 늘어났고 요즘에 와서는 한 달에 1번 정도 경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왠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을 걸어 다니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그 구두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본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샌가 뒷 굽도 다 낡고 앞으로는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 낡은 구두를 몇 번이나 수선했지만 끝내 더 이상 수선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운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사 신을 형편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자 금방 낡은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형편이 아니였기 때문에 학교를 갈 때 버스 타는 대신 걸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새 이천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소복히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을 지나 집으로 가던 중 저 앞에 왠 키 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이었습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다니면 피곤해서 성적 떨어지니까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니?"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이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누나가 몇 번이나 말했니?"
갑자기 동생이 표정을 바꾸면서 물었습니다. "누나, 누나는 얼마나 모았어?" 7500원이란 나의 대답을 들은 동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모은 것과 합치면 웬만한 구두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동안 2000원 모았어. 나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 대견스러워 하마트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트릴 뻔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그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만 원짜리 구두를 샀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 않은 아빠의 생신일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만큼은 집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아빠의 생신일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먼저 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까 구두를 드릴 수가 없잖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빠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지금도 어느 도시 어느 길 위엔가를 걷고 계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덧 내 눈에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께 드릴 새 구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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