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 ~

  • 200
  • 진정한 평안

페이지 정보

  • 작은 사람 (hoysoo)
    1. 3,752
    2. 2
    3. 0
    4. 2006-10-22

본문

헨리 나우웬이 유명한 예일과 하버드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때 사람들은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우웬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때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장애인들 속에 들어갈 때 나는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섬김의 삶, 그것이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이 많아 호화롭게 살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궁리 끝에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림을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평안을 주는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드디어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감상했습니다. 아름다운 산 밑에 호수가 있고, 두둥실 흰 구름이 떠 있는 그림이 있었지만, 그는 이 그림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또 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의 정경을 그린 그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도 지나쳐 갔습니다. 평안을 주제로 한 그 많은 그림들 중 그의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주는 그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걸려 있는 그림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그림은 평안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암벽 한 쪽 틈새로 로빈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로빈새는 물보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앉아 있습니다. 천둥소리를 내는 폭포소리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습니다. 물을 흠뻑 뒤집어쓰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너무나 평화스럽게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는 로빈새 한 마리.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폭포수에 휩싸여 천 길 만길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 같은 둥지인데도 알을 품고 있는 로빈새의 눈에서는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택했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며 물었습니다. "왜 좋은 그림은 다 놔두고 하필 그런 그림을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 평안한 환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안을 얻는 길은 이 로빈새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평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환경에서 평안을 찾으려 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불안과 좌절뿐입니다. 성도들이 얻는 평안은 무풍지대에서의 평안함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이 세파 속에서 우리가 평안을 얻는 유일한 길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 품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품안에서 평안을 얻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소망이 있고 승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의 전기를 보면 그가 종교적인 숱한 논쟁을 벌이고,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언제 자기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생사의 갈림길의 긴장 속에서도 마틴 루터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교개혁을 하던 동료 가운데 필립 멜랑크톤이 마틴 루터에게 편지를 "이번 주말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역할이 무엇인지 우리가 토론을 벌입시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루터가 이런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섭리의 역할은 섭리자에게 맡기고 이번 주말에 자네와 나는 낚시질이나 갑시다."
그러자 멜랑크톤이 깜짝 놀라서 "아니 지금 이 위험한 마당에 당신은 어떻게 그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다시 마틴 루터는 메모지로 답변을 해 왔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여유일 뿐입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여유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히브리서 12장 2절과 3절이란 메모를 남겼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아십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자. 주님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고 부끄러움을 참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스트레스예요? 나를 죽음에 몰아넣는 잔혹한 고문의 형틀인 십자가,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도 십자가를 견디고 부끄러움과 수욕을 견딜 수 있었던 예수님의 내적인 정신의 저력, 그것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오늘의 고통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건너편에 있는 그 영광의 내일, 그 즐거움의 미래를 바라보시면서 오늘의 십자가를 견딜 수가 있었던 주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에는 "너희도 피곤하고 낙심치 않기 위하여 이 주님을 생각하라, 이 주님을 바라보고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를 넘어서 견디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분이 내 인생의 길을 인도하신다면 그것은 얼마나 위대한 여유와 안식 속에서 걸어갈 수 있는 인생의 모습이 될까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늘의 행사

이달의 행사

2024.04 TODAY
S M T W Y F S

가장 많이 본 뉴스

  • ~

서비스이용약관

닫기

개인정보취급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
닫기
닫기